컬러 가전재 시장 상생가치 흐러져…적자 마진에도 거센 인하 압박

K-가전이 압도적인 품질 경쟁력을 선보이며,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하지만 외장재 소재를 공급하는 국내 컬러강판 업체들에 끊임없는 가격 하방 압력을 가하며, 상생이라는 가치를 흐리는 형국이다.
가전산업은 건설산업과 더불어 컬러강판의 양대 수요 산업 중 하나다. 중국산과의 경쟁이 비교적 덜하다는 점, 건설산업 대비 그럭저럭 괜찮은 산업 전망을 보인다는 점 등으로 인해 장기적 차원에서 가전재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컬러강판 업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다만, 컬러강판 업계 입장에서 현 가전재 시장 생태계는 그리 따뜻하지는 않은 곳이다. 실수요업체인 가전사로부터 마진을 사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탓이다.
국내 가전사는 여러 공급사와의 계약을 통해 공급망을 다변화한 뒤, 공급사 간 경쟁을 붙여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 수요 업체가 여러 공급업체를 두면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설비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아 공급업체 수가 많은 컬러강판 업계의 특성상 이러한 전략은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업체 수가 많은 만큼 경쟁이 치열해 제품 가격에 대한 인하 압박이 심하기 때문이다.
허리 휘는 측판 소재 공급 업계
모든 컬러강판 업체가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전면 부위에 적용되는 라미네이트강판(VCM)을 납품하는 업체들의 경우 경쟁의 과열 정도가 비교적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라미네이트강판은 무늬와 색상을 도료로 입힌 기존 컬러강판과 달리, 필름 부착을 통해 표면 형태를 구현한 강판이다. 도색 층이 없는 탓에 표면이 매끄럽고 내식성이 강한 데다 색상 역시 자연스러워 디자인적 측면에서 유용하다.
프리미엄 제품이라는 콘셉트를 표방하는 국내 가전사들은 자사 가전제품 전면부에 VCM을 적용해 디자인을 완성하고 있다. 이때 라미네이트강판 제조에는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라미네이트강판을 공급하는 업체 수가 많지 않아, 가전사 입장에서도 공급사 간 경쟁을 통한 협상 우위를 점하기가 어렵다는 평가다.
가전사의 제품 가격 인하 압박에 가장 노출된 컬러강판 업체는 가전제품 측판 소재를 납품하는 업체들이다. 측판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사람 손길이 닿는 경우도 별로 없어, 라미네이트강판이 아닌 일반 컬러강판이 사용된다. 이러한 요인 탓에 공급 업체 수가 많아,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구도다.
국내 가전사들은 이러한 점을 적극 활용하며, 강판 매입 가격을 낮춰 나가고 있다. 지난달 가격 기준 1톤 컬러강판 판매당 약 4만~5만 원의 적자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가전사들은 추가적인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약 2년간 가격 내림세가 지속되며, 주저앉은 컬러강판의 마진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에 컬러강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부진하다고 평가받는 건재시장보다도 가전재 시장에서 적자 폭이 더 크다"라며 "6월 나타난 7만원 인상분도 반영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내수 가전재 판매 감소 폭...역대 최악 평가받는 건재 상회
자료출처=본지집계&한국철강협회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자, 업체들의 내수 가전재 사업도 점차 철수하는 추세다. 실제 국산 제품의 내수 가전 판매 감소 폭은 전체 컬러시장 감소 폭을 크게 웃돌고 있다. 한국철강협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내수 컬러강판 전체 판매는 118만 9,870톤을 기록한 이래, 점차 감소하며, 2024년에는 115만 6,083톤으로 줄어들며 2.84%가량 감소했다.
이런 상황 속 국산 건자재용 컬러강판 판매는 비교적 전체 판매 동향과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컬러강판 8대 제조사(동국씨엠·KG스틸·포스코스틸리온·세아씨엠·아주스틸·디케이동신·디씨엠·비엔스틸라)를 대상으로 한 본지 집계에 따르면, 2021년 내수 건재 판매는 76만 7,681톤을 기록하며, 점차 줄더니, 2024년 71만 3,336톤으로 집계되며 총 7.08% 감소했다. 반면, 가전재의 경우 2021년 43만 702톤 판매가 다음 해인 2023년 36만 6,779톤으로 나타나며, 앞자리가 바뀌더니, 2024년에는 33만 9,375톤까지 떨어지며 총 21.2% 줄어들었다.
가전재 판매를 통한 수익 확보가 어려워짐에 따라, 가전재 생산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이는 건재 유통 물량 증가로 이어져 건재 가격에도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가전재 부문의 적자가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업체들은 가전재 전용 컬러강판도장라인(CCL)에서 건재용 제품을 생산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적자가 부담돼 단순히 가동률을 낮춰버리면 설비 관리비, 인건비 등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 가동률을 유지하면서도 가전재 생산을 줄이기 위함이다.
다만, 이 역시 명쾌한 해결법이 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현재 건재 시장은 수요가 크게 침체돼 공급이 수요를 웃돌아 가격 인상분의 반영도 어려운 상황이다. 기존에 가전재 만을 생산하던 CCL에서 건재 생산이 이뤄진다면, 포화 상태인 건재 공급이 더욱 늘어 가격 하방 압력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한편, 컬러강판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전재 수익을 늘리기 위해 인도 등 신시장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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