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가짜 국산의 시대 “이젠 다 알아요, 한국은 가짜 만든 나라”…수출 신뢰 붕괴와 제조 기반 침몰
수출 바이어들이 묻는다. “이거, 진짜 한국산 맞나요?”
열교환기용 튜브를 둘러싼 정체성 논란이 국내를 넘어 수출 시장으로 확산하고 있다.
표면상 ‘한국산’ 제품으로 분류돼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에서 제조됐을 가능성이 있는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다는 정황이 잇따르면서다. 철강업계에서는 “해외 바이어들도 이미 알고 있다”며, 한국산의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수출업체는 “샘플은 정품으로 제출하고, 본 납품은 원가를 맞추기 위해 다른 소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털어놓는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공공연히 반복되고 있으며, 해외 바이어들조차 이를 전제로 거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 “서류만 맞으면 된다”…묵인되는 위장 유통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해외 발주처는 제품의 진짜 생산지를 끝까지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요한 건 납기, 가격, 그리고 ‘인증 서류’다.

한국에서 가공 혹은 포장을 거쳐 ‘Made in Korea’로 표기된 제품이라면, 내용물은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정직하게 만들면 도저히 단가가 맞지 않는다”는 토로가 끊이지 않는다. “바이어들도 이미 알지만, 묵인하는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철강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국내 시장 가격이 정품 생산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무너졌다는 점이다. 열교환기의 소재로 사용되는 튜브 가격의 경우 일본산 소재가 킬로그램당 3,600원, 국산 정품은 3,200~3,300원 수준이다. 반면 중국산 소재는 1,500원에 불과하다.
부산 지역 철강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국산으로 위장된 중국산 제품의 수입원가는 1,700원 선으로 국산과 비교해 절반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왜곡된 가격 구조는 정품 제조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가공비·검사비 포함 정품의 원가는 3,000원 이상인데, 시장은 2,000원 수준을 요구한다”라고 하소연했다.
수요처가 가격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위장 유통은 사실상 유일한 납품 전략이 되고 있다.
◇ '진짜 제조사'는 줄고, ‘서류 제조사’만 남는다
부산 지역 튜브 제조 기반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 냉간인발, 열처리 설비를 갖추고 생산하던 다수 업체가 폐업하거나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다. 현재 가동 중인 업체도 원재료 공급 차단, 수익성 악화로 생산을 제한적으로 유지하는 수준이다.
반면, 가공 설비 없이도 제조사 인증을 보유한 일부 유통사들은 제품을 수입해 ‘제조사 명의’로 납품하고 있다. 이들은 서류·포장만 관리하며 제조 이력을 갖춘 제품처럼 위장할 수 있다. 실제 생산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한국은 ‘경유지’에 불과한 셈이다.

중국의 품질 추월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국내 엔지니어들이 과거 중국 현지에 파견돼 기술을 지도했고, 수입업자들도 이를 거들었다. 아울러 중국 기업들은 일본산 열처리 설비와 독일산 압연기를 도입하며 품질 격차를 좁혔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가 일본에 배운 데 30년 걸린걸, 중국은 3년 만에 따라왔다”고 말했다.
일부 제품은 이미 국내 대형 조선소와 EPC 발주처의 인증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열처리·내식성 등 일부 품질 요소에서는 ‘사용 가능’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 통상 마찰 우려…한국산, 의심의 브랜드 되나
이와 같은 위장 유통이 계속된다면, ‘한국산’이라는 국가 브랜드 자체가 국제 통상 분쟁의 불씨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중국산 스테인리스(STS) 제품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수입된 정황이 확인됐다. 일부 프로젝트에선 한국산 자재 전체에 대한 재심사가 이뤄졌다는 증언도 있다.
2023년 유럽 반부패청(OLAF)은 중국산 스테인리스 파이프가 한국산으로 위장돼 유럽으로 유입된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 이들 제품은 한국에서 실질적인 가공 없이 원산지만 한국으로 표기돼 반덤핑 관세를 회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OLAF는 이를 통해 약 650만 유로 규모의 세금 회피가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유럽 공공검찰청(EPPO)도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중국산 스테인리스 코일을 한국산으로 위조해 수입한 혐의로 두 개 업체를 조사 중이다. 이들은 110건 이상의 수입에서 원산지를 허위 신고해 약 240만 유로의 관세를 피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관련 자산과 제품이 압류됐다. 독일과 영국 등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확인돼, 세관 당국이 전자 데이터와 실물 증거를 바탕으로 추가 분석에 착수한 상태다.
철강업계는 지금의 구조가 정직한 제조업체가 버티기 어려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국 제조사는 모두 사라지고 서류와 포장만 남는 껍데기 산업이 될 것”이라며 “이제 한국은 제조국이 아니라 ‘위장 가공국’이라는 인식이 세계 시장에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짜 국산의 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한국산이라더니 전부 중국산?”…열교환기 튜브, 위장 유통의 민낯② “이젠 다 알아요, 한국은 가짜 만든 나라”…수출 신뢰 붕괴와 제조 기반 침몰③ “걸려도 또 한다”…가짜 국산, 막지 못하는 제도 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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