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철강산업 위한 성장통 시기 … 무역조치로 전환시간 벌되 경쟁력 키워야”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한국 철강산업이 보호무역주의, 내수 부진 등 대내외적 악재에 맞닥뜨리며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정부를 포함한 한국철강업계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 실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한국 철강업이 발전과 쇠퇴를 가르는 역사적 변곡점에 있다고 진단하며 기업들의 자체적 경쟁력 강화 노력과 정부의 시의적절한 지원책이 맞물릴 때 산업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국내 철강산업의 위기의 가장 핵심적 원인은 무엇인가?
A. 철강산업 역사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주기의 한 국면일 수 있다.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나라는 철강이 많이 필요하고, 철강산업에 투자를 늘린다. 초기에는 공급이 부족하니 수입이 늘고, 이후 투자가 확대되면서 수급을 어느 정도 맞추게 된다.그러나 시간이 지나 인프라 건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제조업 일부가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면 국내 철강 수요는 생산능력에 비해 부족해진다. 따라서 남는 것을 수출로 해결하다, 수출도 한계에 다다르면 구조적 위기라는 진단이 나오고, 그때 산업은 새로운 변화를 추진하게 된다. 변화에 실패하면 쇠퇴하고, 잘 대응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겪는다.현재 한국 철강산업도 새로운 철강산업으로 가기 위한 성장통을 겪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쟁 등 이벤트들이 이어지면서 구조적 문제가 가려져 있었지만, 그 이전인 2018년과 2019년에도 국내 제조업 성장과 철강 수요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미 있었다.현재 그 흐름이 더 가속화하면서 국내 생산능력을 내수와 해외 수요만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각보다 빠르게 도래한 것 같다.
Q. 미국이 50% 관세를 부과하고 EU도 수입 규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수출 전략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A. 현재 대미 수출이 관세에도 오히려 늘었다. 미국 제강사들이 공급을 크게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 내 가격도 올라가다 보니, 수입산도 그 가격 수준에 맞춰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무역장벽이 생겼을 때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효과다.50% 관세가 계속되면 기업들은 그것을 고정 요인으로 보고 전략을 바꾼다. 즉 미국 내 공급능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지금처럼 한국과 미국 시장의 가격 격차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렵다고 본다.따라서 미국 시장은 단순히 가격 경쟁으로 제품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현지 공급망과 연계해 접근해야 하는 시장으로 봐야 한다. 에너지 인프라, 조선, 방산, 전력기기처럼 미국 내 수요산업의 공급망에 들어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높은 관세를 부담하고도 미국에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제품을 적시에 개발하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현지화도 가능한 선택지다.유럽은 조금 다르다.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 유럽 내 가격이 오를 수는 있지만, 유럽은 생산능력이 충분하다. 현재 가동률이 낮아져 있을 뿐이기 때문에 시장 보호가 이뤄지면 가동률을 비교적 빠르게 높일 수 있다. 또 EU 시장과 한국 시장의 가격 격차가 미국만큼 크지도 않아 쿼터 밖 물량에 관세를 부담하면서까지 수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이 같은 상황에서 유럽은 제한된 수량 안에서 저탄소 제품을 수출해 보는 테스트 베드로 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본다. CBAM도 시행되고 있고, 유럽은 저탄소 인증 조건과 환경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그런 기준을 맞춰 나가면서 저탄소 제품을 수출하면, 환경 규제 대응 역량과 제품 경쟁력을 함께 높일 수 있다. 그 경험은 나중에 다른 시장으로 수출할 때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나머지 시장은 수요가 어디에서 늘어나는지, 어디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보면서 대응해야 한다. 결국 기업도 이익을 내야 하므로 수익성이 있는 시장을 찾아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Q. 중국산 저가 철강재 유입 문제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응 방향은 무엇인가?
A. 우선 중국이 어떻게 그렇게 큰 원가 차이를 만들 수 있는지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같은 원료를 수입해 쓰는데 원가 차이가 왜 그렇게 크게 나는지 확인해야 한다. 설명 가능한 원가 차이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가격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시장 경쟁을 해치는 덤핑일 수 있으므로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물론 중국산 전체를 모두 저가품으로 몰아가기는 어렵다. 실제로 원가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에너지 비용, 전력요금, 규모의 경제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요인 때문인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우리 기업의 노력이나 정책 지원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또 그 경쟁력 차이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도 봐야 한다.만약 원가 측면에서 이미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분야라면 빠르게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무역구제는 필요하다. 단순히 시장이 어렵기 때문에 보호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저수익 분야에서 고수익 분야로 전환할 시간을 벌어 주고, 그 안에서 자생적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차원에서 무역구제를 활용해야 한다.중국 쪽이 명백히 시장 경쟁을 해치는 분야에서는 무역구제로 대응해야 한다. 반대로 원가 경쟁이 이미 어렵다고 판단되는 분야는 산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중국보다 원가가 조금 높더라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분야는 경쟁력을 더 높여 가는 수밖에 없다. 철강산업 관련 특별법과 특구 제도도 있는 만큼, 과감하게 지원할 수 있는 분야에는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Q.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정책 보완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최근 우리나라 철강산업의 생산비용이 너무 빠르게 높아졌다. 전기요금이 많이 올랐고, 배출권거래제에 따른 실제 부담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인건비와 각종 환경, 에너지, 노동 관련 규제 대응 비용도 높아졌다. 이런 요인 때문에 해외 생산 유인이 커지는 상황이다.유럽은 철강금속행동계획과 같은 정책 등을 통해 역내 공급망을 지키려 한다. 우리도 철강산업의 공동화를 빠르게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에서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산업 전환과 연계해 마련해야 한다. 생산세액공제 같은 지원도 거론되고 있는데, 환경, 에너지, 노동 관련 비용 부담과 규제 대응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진 부분을 일시적으로라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중국과 경쟁할 수 있다.두 번째는 저탄소 전환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다. 트럼프 변수에 가려져 있지만, 저탄소 전환 투자의 동력이 많이 약해졌다. 지금 빨리 투자해야 2035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회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한국엔 다배출 산업의 대규모 저탄소 전환 투자를 유인하는 지원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부 등에서 논의는 하고 있지만, 예산 한도와 제도 설계의 한계가 있다. 독일의 탄소차액계약(CCfD) 사례를 보면, 다배출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임에도 현실적 제약 때문에 1차 사업에는 철강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2차에서는 조건을 더 완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실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도록 하는 유인 체계를 빨리 만들어야 기업이 투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세 번째는 고급 스크랩 확보다. 스크랩 산업과 공급 체계를 선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고급 스크랩이 충분히 확보될지는 의문이다. 중고차나 해외로 빠져나가는 물량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회수 가능 자원이 있을 수 있다. 고급 철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원 회수 측면에서 놓치고 있는 분야를 더 발굴하고, 회수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네 번째는 지역별 전문화와 종합 전략이다. 지역별로 어느 정도 특화가 돼 있기는 하지만, 국가 차원의 철강산업 종합 전략 아래에서 생산 거점과 지역별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더 분명히 해야 한다. 각 지역이 산업위기 지역 지정이나 개별 지원을 추진하지만, 전체 방향이 부족하면 기존 구조가 그대로 난립할 수 있다. 국가 철강산업 고도화를 위해 지역별 차별화와 전문화, 인프라 구축, 특구 제도 같은 장치가 하나의 종합 비전 안에서 맞물려야 한다.마지막으로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에 대한 장치도 더 확실해져야 한다. 사업 재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업계 안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다. 필요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체질을 개선할 것인지, 강력한 유인 체계는 무엇인지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사업 재편을 무조건 강행하자는 뜻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 사업 재편을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더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Q. 향후 5년간 국내 철강산업의 생존과 성장을 좌우할 핵심 변수 세 가지를 꼽는다면?
A. 첫 번째는 트럼프발 통상질서 변화다. 미국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교역질서와 보호무역 흐름 전체에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것은 특정 시장에 얼마를 더 팔고 덜 파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국제무역 관점에서 보면 글로벌 교역량이 줄어들면 교역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순기능도 약해진다. 교역량 감소는 세계 경제 성장과 철강 수요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안보와 통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교역량이 둔화되는 것은 세계 GDP와 철강 수요 모두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트럼프발 세계 경제 질서의 혼란이 얼마나 빨리 안정될 수 있느냐가 첫 번째 변수다.두 번째는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가 실제로 작동하면서 철강산업에 얼마나 큰 원가 부담을 줄 것인지 봐야 한다. 배출권 가격이 얼마나 오를 것인지, 그것이 전기요금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 철강산업이 단기간에 감내해야 할 비용 인상 압박이 얼마나 커질 것인지 봐야 한다. 그 부담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두 번째 핵심 변수다.세 번째는 중국의 구조개혁이다. 중국이 정말 구조개혁을 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과 같은 흐름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봐야 한다. 중국이 구조개혁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우리에게 수출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만, 동시에 중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더 긴장해야 한다.반대로 중국이 구조개혁을 더디게 하면서 범용재와 저가 제품을 계속 밀어내면, 우리는 그에 대응해야 한다. 그 경우에는 현재처럼 저가 제품 유입에는 대응하면서 우리가 강점을 가진 핵심 분야에서는 격차를 더 확대해 나가야 한다.
Q. 하반기 주요 수요산업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A. 건설투자는 하반기에 증가세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것이 철강 수요를 강하게 이끌 정도의 효과인지, 아니면 건설 침체가 종료됐다는 상징적 의미에 가까운지는 더 봐야 한다. 그래도 건설투자가 증가세로 전환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자동차 부문에서는 국내 전기차 전용 신규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고, 하이브리드를 포함한 친환경차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어 하반기 생산은 소폭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관련 철강 수요도 하반기에는 비교적 견조할 것으로 본다.조선업은 호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철강 수요 측면에서 그 효과가 올해 곧바로 크게 나타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박 수주가 실제 건조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있고, 지난해에도 조선용 후판 투입이 이미 많았던 만큼 올해 조선용 후판 수요는 전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기존 수주 물량이 내년부터 건조로 본격 이어지면, 조선용 후판 수요도 다시 개선될 수 있다.전체적으로 보면 하반기 주요 수요산업은 강하게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더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AI와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는 전력기기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고, 가전은 중남미 등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이 이어지고 있다. 기계 분야에서도 일부 수요 요인이 나타나고 있다. 물량 규모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전력기기와 가전, 기계 등 여러 분야에서 철강 수요를 일정 부분 지탱하는 흐름은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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