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6-철강도시가 흔들린다] 건설침체에 멍든 당진시…전기료 급등에 '피멍'
"수요 침체도 문제지만 전기료가 더 걱정입니다. 버티려 해도 고정비 감당이 안 돼 문 닫아요."
역대급 건설경기 침체와 저가 수입산 범람으로 국내 철강산업이 최악의 부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주요 철강 도시들의 현장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지난달 27일 당진시로 향했다.
굴지의 철강기업 현대제철을 보유한 당진은 포항과 광양에 이어 국내 3대 철강 도시 중 하나다. 이날 오후 서해안고속도로를 하행 방면으로 달려 도착한 당진산업단지들은 대부분 활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아산국가산업단지 부곡지구부터 석문국가산업단지까지 계절적 성수기임을 감안하면 조용하다 못해 말 그대로 호젓했다. 그 흔하다는 코일 실은 트레일러도 쉽게 찾기 어려웠다.
이처럼 현재 우리 철강산업은 나라 안팎으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내수 침체에 이어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사실상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당진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번 철강 경기 침체는 우리 지역 경제에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대기업 활동 위축이 2차 협력업체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곧 지역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철강산업은 지역 경제의 중추이자 고용 기반이나 현재는 경기순환을 너머 구조적 위기 국면까지 접어들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선제적 대응 없이는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진상공회의소는 앞서 지난 2월 의원총회에서 '철강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이날 건의문은 작금의 당진 철강산업 위기를 진단하고 이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각종 규제 완화와 금융지원, 산업전환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 등 다각적 지원을 정부에 주문했다.
그러면서 특히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기요금 감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위기 극복을 위해 한시적으로라도 최근 급등한 산업용 전기료 감면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 전기료 줄인상 제조업 '비명'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전력공사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2022년부터 총 7차례 산업용 전기료를 올렸다.
한전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료 판매 단가는 2021년 킬로와트시(kWh)당 105.5원에서 지난해 185.5원으로 3년 만에 75.8%(80원) 급등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평균 9.7% 인상된 가운데 철강 등 대용량 고객 대상인 산업용(을) 전기요금은 kWh당 16.9원(10.2%) 오르며 1년 만에 다시 최대폭으로 인상됐다.
앞서 정부는 재작년 11월에도 산업용(을) 전기요금만 kWh당 10.6원(6.9%) 올리고 기타 요금은 동결한 바 있다.
낮은 전기료는 오랜 기간 국내 제조업의 산업 경쟁력으로 작동했으나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와 부채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면서 당국이 이를 메우기 위해 산업용 전기료를 빠르게 인상하기 시작했다.

기업은 한전 전체 고객의 2%에 불과하지만 전력 사용량은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 보니 각종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 주택용 전기료는 동결을 이어가고 산업용 전기료만 인상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23년부터는 산업용 전기료가 주택용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가정용 전기요금은 2023년 5월(kWh당 8원) 인상을 마지막으로 2년 이상 동결된 상태다.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으로 구성된다. 이 중 연료비조정요금은 최근 에너지 가격 흐름이 반영된 연료비조정단가에 연동되는데 현재 최대치인 '+5원'이 적용 중이다.
최근 연료비 가격이 하락 추세임을 감안하면 연료비조정단가도 인하 조정해야 하지만 정부는 한전의 재무 상황을 고려해 최대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전의 연결 기준 총부채는 205조1,81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일부 흑자로 축소됐지만 2021년 이후 누적 영업 적자는 여전히 35조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 차라리 공장 문 닫는 기업들
이처럼 급격한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300곳 가운데 78.7%가 현재 전기요금 수준에 대해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경영활동이 위축될 정도로 부담이 매우 크다'도 46.4%에 달했다.
합금철 제조업체 심팩은 수요 부진 속 급증하는 전기료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난해 5월 당진 공장 문을 닫았다.
국내 2위 철근 제강사 동국제강도 오는 7~8월에 걸쳐 약 한 달간 인천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동국제강 창립 71년 만에 처음으로 공장 셧다운에 들어가는 것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철근 유통가격이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가운데 평시 대비 20% 할증되는 하계 전기료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계 야간조업으로 비수기 대응에 나섰으나 산업용 전기료 추가 인상에 이마저도 포기한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근 제조원가는 톤당 75만원, 판관비까지 포함한 총원가는 80만원 수준이지만 최근 유통시세는 수요 급감에 따른 출혈경쟁으로 70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당진 철근 전문 제강사 환영철강공업도 지난해 영업손실 29억원으로 적자 전환과 함께 당장 올 1분기부터 90억원의 대규모 적자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철근 생산 가동률은 이미 50%대까지 내렸으나 적자 누적이 장기화될 경우 환영철강공업 역시 공장 셧다운 카드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국내 철근 수요(내수+수입)는 2023년 958만톤에서 지난해 778만톤으로 무너진 뒤 올해 600만톤대 진입까지 위협받고 있다.

■ "산업용 전기요금 체제 개편" 한목소리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 경감을 위해 실제 수요에 맞는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로 개선하고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에 대해 별도 요금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 3월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방안'에서 이같이 밝혔다.
경총이 방직, 섬유, 철강, 시멘트 등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한 산업 업종별 1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평균 전기요금 납부액은 2022년 481억5,000만원에서 지난해 656억7,000만원으로 2년새 36.4% 급증했다. 이 기간 매출액 대비 전기요금 비중 역시 7.5%에서 10.7%로 42.7%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대응방법(복수응답)으로는 '고효율 설비로 교체 등'이 44%로 가장 많았고, △제품가격 인상(39%) △설비가동 중단 또는 가동시간 축소(38%) △요금이 저렴한 야간 또는 주말로 작업시간 변경(27%)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시급한 정부의 지원 방안으로는 산업용 전기요금 체제 개편을 꼽았다. 기업들은 △실제 수요에 맞는 계절별·시간대별 요금제 개선(63%)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에 대한 별도 요금제 시행(41%) △소비자 보호장치 강화(19%) 등 순으로 응답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국제유가 급등, 한전 경영난 등을 감안하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점은 이해하나 산업용에 집중된 요금 인상으로 기업들의 생산·투자 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며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상황으로 이미 한계에 놓인 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산업용 전기요금의 과도한 인상이 자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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