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덤핑률만 본 건 반쪽…일본·중국 열연 반덤핑 조사 속 숨은 전쟁
최대 33.57%의 잠정관세가 부과된 일본·중국산 열연강판 반덤핑 예비판정. 하지만 판정 의결서 속에는 단순한 수치로는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전쟁이 펼쳐져 있었다.
일부 기업의 자료 미제출과 불일치, 특수규격 품목 제외를 둘러싼 공방, 시장가격 왜곡, 정보공개 논란까지, 통상 절차와 전략 전반을 가르는 복합전이 조용히 진행됐다.
◇ 조사 비협조와 데이터 불일치…신뢰성 흔든 공급자 대응
예비조사 과정에서 무역위원회는 일본·중국 주요 공급자들에게 방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일부 기업은 핵심 데이터를 누락하거나 관계사 자료와 맞지 않는 수치를 제출했다.
무역위원회가 발표한 일본 및 중국산 열연강판 예비판정 의결서와 예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Ansteel Group 계열사인 Pangang Group은 특수관계사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Angang Steel은 관계사 판매 내역과 내수 판매량이 일치하지 않아 ‘실제 거래 흐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한 ‘비협조’ 판정은 덤핑률 산정에서 불리한 ‘사실판정(FA, Facts Available)’ 적용 가능성을 높인다. FA가 적용되면 조사당국은 불리한 추정값을 임의로 반영할 수 있어, 해당 기업 입장에선 관세율이 한층 높아질 위험이 있다.
조사 비협조는 단순 행정 문제가 아니라, 향후 최종판정에서 관세율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이자, WTO 분쟁 가능성까지 연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조사대상에서 빼달라는 업계 요청도 치열했다. 일본 다이도특수강은 ‘다이도 공구강’ 17개 품목을 부과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가 생산하지 않는 규격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무역위는 “성분 조정이나 생산 전환을 통해 대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유보 결정을 내렸다.
폭 2,001mm 이상의 초대형 열연 코일도 논란이 됐다. 수요자인 넥스틸과 중국강철공업협회는 “국내 생산 불가 품목”이라며 제외를 요구했지만, 무역위는 “폭 절단만으로 범용 규격으로 전환 가능, 관세 회피 우려가 크다”며 거부했다.
30CrMo 합금강, 내황산부식강 등 일부 특수 규격 강종도 마찬가지였다. 수입자들은 “국내 생산 불가능”을 주장했고, 국내 제조사들은 “대체 강종 생산이 가능하고, 우회 수입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예비판정 단계에서 다수의 제외 요청이 기각되면서, 본조사에서도 ‘우회 방지’ 논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 가격 구조 왜곡…“원가 하락해도 판매가 더 떨어져”
예비조사보고서는 피해 원인을 단순히 ‘저가 수입’으로 한정하지 않았다. 덤핑 물량이 국내 유통가격을 구조적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간 중 원재료 가격이 하락한 시기에도 국내 판매가격은 원가 하락 폭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 특히 일본산과 중국산의 ‘초저가’ 오퍼가격이 시장 최저가 기준점을 만들면서, 국내 제조사들이 가격을 올리기는커녕 방어선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는 국내 업체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이중 압박이 됐다는 설명이 잇따른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 하락분이 전혀 이익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격 인하 경쟁에 흡수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역위도 이를 “정상가격 회복 여력을 봉쇄하는 가격 왜곡”으로 규정하며, 관세 부과의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절차적 투명성을 둘러싼 이례적인 공방도 있었다. 일본철강연맹과 중국강철공업협회는 신청서 공개본에서 비공개 처리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공식 항의했다.
특히 조사대상물품의 물리적 특성 비교 자료가 초기에 공개되지 않아, 피신청인 측은 “방어권 행사에 제약이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무역위는 해당 자료를 뒤늦게 공개했지만, 비공개 범위 설정을 둘러싼 논란은 남았다.
업계 관계자는 “덤핑률이라는 숫자만 보면 단순한 가격 분쟁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번 조사에는 기업의 대응전략, 우회 방지 논리, 절차 투명성 논란까지 맞물려 있다”며 “최종판정 결과뿐 아니라 향후 통상 분쟁에서 중요한 선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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