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3] 산업연구원 정은미 본부장

인터뷰 2025-06-16

“정부, 탄소 중립 위해 기업들에 물어야”“CBAM, 위기가 아니라 앞서 나갈 기회”“중국 감산 의존 말고 국내 체질 바꿔야”“‘나 홀로 독주’시대 끝, 동반성장 나서라”

Q. 3년 전, 탄소 중립을 단순히 ‘얼마나 줄일까’의 관점에서 다루지 말고 ‘성장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현시점에서 정부의 정책을 평가해 주신다면?

A. 정부는 여러 정책을 발표했으나 목표를 갖지 못하고, 선진국 사례를 따라서 발표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 결과는 기술 따로, 제도 따로, 금융 따로 진행되면서 정책은 있으나 기업이 체감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탄소 중립은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험에 대처해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한으로 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이 등장했다는 것은 탄소 중립이라는 것이 경제적 이해관계와 조응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유럽, 미국 등 주요국이 탄소 중립에 적극 나선 것은 중국의 부상과 함께 위축된 자국 내 제조 기반을 재구축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탄소중립으로 열리는 거대한 새로운 시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탄소 중립은 메가 트렌드(Mega Trend)다. 정권에 따라 한시적으로 추구될 가치가 아니다. ‘대전환’을 위한 선도적 대응이 필요하다. 원료, 공정과 설비, 시장과 소비자를 모두 바꾸는 것이다.

독일은 탄소차액계약제도(CCFD)를 통해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기술을 활용해 이산화탄소 1톤을 감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유럽연합 탄소배출권거래제(EU ETS)의 배출권 가격을 초과할 경우, 그 차액을 정부가 보전해 준다. 또 미국과 독일은 건축 자재 사용에 일정 비율 이상 저탄소 제품 사용 의무를 부과해, 가격이 높아도 사용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시장을 만들어줬다.

한국을 보면, 정부는 건축 단가가 오르기 때문에 저탄소 제품 의무 사용 등 제도를 도입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는 CBAM이 곧 본격 시행되니 탄소 배출권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기업 부담을 늘리는 것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탄소 중립으로 새로운 거대한 시장이 열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제도, 시장, 기술의 조화로운 작동이 필요하다. 온실가스 감축, 중소기업 지원만으로는 소극적인 대응이며, 변화하는 글로벌 경쟁 패러다임에서 한국 산업이 선제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여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정책 목표와 이에 걸맞은 정책 지원이 있어야 한다.

Q. 우리나라는 올해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국제연합(UN)에 제출해야 하는 가운데, 한국철강협회는 “수소환원제철 등 근본적 설비 전환에 시간이 필요하므로 목표 설정 시 산업별 여건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A. 타당하다고 본다. 협회의 입장은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생산을 감축하는 것 외 다른 대안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설비 전환을 위해서는 기술과 자본, 시장, 그린 인프라가 모두 충족돼야 하는데 한국은 모두 없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소 감축을 하는 것은 철강 생산을 줄이는 것밖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건물을 지을 때 고강도 철근이나 형강을 사용하면 80톤을 쓰고도 일반 강재 100톤의 성능을 낼 수 있다. 중국도 철근을 고급화해 철근 생산량을 천만 톤가량 줄인 바 있다. 만약 더 좋은 제품에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한다면 생산을 줄이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법이 가능하겠지만, 이는 현재 한국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위해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물어야 하며 이를 촉진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철강산업에서 탄소 중립 대응은 특정 기업 혹은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생산 체제, 국제경쟁력, 새로운 기술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Q. 내년 CBAM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히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EU는 CBAM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그 기반이 되는 DPP(디지털 제품 여권)와 같은 제도 등은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이를 분석해 실제 시스템에 반영하는 작업은 진행 중이다.

한국 기업의 정보가 그 준비 과정에 활용되고 있는데, DPP를 통해 원료 투입, 에너지 사용, 온실가스 배출 등 민감한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면, 공장의 효율성과 노하우가 노출될 수 있어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CBAM과 DPP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EU가 제도 시행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이 한국이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할지 말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고부가가치화·정밀화·고기능화 등으로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을 제외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큼 제조 경쟁력과 산업 기반을 갖춘 나라도 드물다.

그리고 지배 기술(인공지능(AI), 데이터 등)에 대한 활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자동차, 조선, 기계, 건설 등 주요 산업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기존 제품을 계속 생산해 공급하는 전략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GPT(일반 목적 기술)처럼 전 산업에 영향을 주는 기술은, 산업 판도를 빠르게 바꾸는 동력이 된다. 전기, 바퀴, 인터넷이 그랬듯 AI도 이제 철강 산업의 외부 기술이 아닌 내부 핵심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Q.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생에너지 확대를 장기 비전으로, 전기요금 거리비례제 도입 등 여러 에너지 정책 공약을 내놨다. 새 정부 출범이 한국 철강업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시는가?

A. 탄소 중립 추진에 대한 압력과 지원이 모두 강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탄소 중립 압력은 더 강해질 것인데, 다행인 건, 이전의 어떤 정부는 원칙만 강조하고 과정으로서의 현실적 경로나 수단은 무시했던 반면, 이재명 정부는 실용주의, 성장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봐 줬다. 그게 다행인 점이다. 지원도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전기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지만, 요금 자체를 무조건 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비효율을 줄이면서 인상 폭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안정적이고 품질 좋은 전력을 경제적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요금이 오른다고 해도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면 된다.

독일을 보면 재생에너지 확대 때문에 전기요금이 오르자, 가정용 전기요금은 올리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정부가 보조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난방비 부담이 커 샤워조차 아껴야 할 정도였던 가운데 제조업 전기요금은 한국과 비슷했다. 그만큼 산업 보호를 확실히 한 것이다.

현 정부가 성장과 제조업 중시 관점을 갖고 있는 만큼, 산업계가 혁신, 발전 의지를 보이면서 정책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Q. 중국 당국이 지난 3월 양회에서 조강 생산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혹시 이와 관련해 업계와 공유하고 싶으신 생각이 있으신가?

A. 중국이 조강 감산을 추진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단기간의 상황이 호전된다고 해서 국내 산업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철강 생산의 20~30%를 수출에 의존하는 구조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기적 호재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병행하면서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 내수 상황 등 중국 요인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자율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 철강 산업은 독립적인 전략과 자율성을 갖고 수요 산업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현실에서 조선업계가 철강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철강사는 거절하고, 그러다 안 팔리면 조선업체에 가서 사정하는, 이러한 일들이 20~30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책이다. 정부는 산업 간 균형 잡힌 거버넌스를 통해 전략적 조정을 지원해야 하고, 기업들도 단기 이익만 보지 말고 산업 전체 생태계를 바라보는 대승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Q. 철강업계의 AI 기술 적용과 관련해 제언하실 것이 있다면?

AI는 일반목적기술로, 공정뿐만 아니라 기업 내 가치사슬 전반(원료 조달-생산-계획-물류-경영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율 제조, 산업 AI를 통해 적극적으로 산업별 활용 모델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중소기업뿐 아니라 철강 기업 전체가 정부 지원을 통해 성장 방안을 탐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AI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를 발굴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며, 사내에서 이를 담당할 수 있는 미래형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정부, 대학, 기관 등에서 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지역/전후방 기업들과 공동으로 사업에 참여한다는 개방적인 마인드를 꼭 갖춰야 한다.

Q. 한국 철강업계는 미국의 철강 50% 관세, 저가 철강 유입 등 대내외적 어려움에 처해있다. 마지막으로 업계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철강 산업이 수요 산업과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 철강은 기초소재산업으로 자동차, 조선, 기계, 건설 등 수요 산업과 맞물려 발전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급자 주도적 모양새가 됐는데,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철강 산업이 앞으로 살아남고 성장하려면 수요 산업과의 협력과 동반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또 철강 산업 내부에서 전후방 기업 간의 신뢰 관계도 매우 중요하다. 융복합 시대고 대전환 시대에서 대기업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현재 연 50만 톤 이하의 수요도 취급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철강사들은 대량 생산 판매에 익숙해져 있어 유망 제품, 고기능성 제품이어도 연 50만 톤 이하이면 생산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틈새시장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시대다.

만약 대기업이 자신이 다 못 할 것 같으면, 중소기업에 원료를 잘 대주고 그러한 제품들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또 수소환원제철 추진 과정에서도 대기업이 EPC(설계·조달·시공)를 모두 맡는 것이 아니라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 고내화 소재 업체 등 관련 산업 기업들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철강이 산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대기업이 혼자서 각개격파식으로 나가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함께 미래를 설계하고, 한국 제조업의 전체 비전을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정은미 선임연구위원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의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철강 및 소재 산업, 산업 혁신 및 신성장동력 정책을 연구하고 있고, 최근 연구로 ‘가치사슬에 기반한 한국 산업의 경쟁우위 진단’, ‘한국형 스마트 제조 전략’, ‘한국산업 발전비전 2030’, ‘주력산업의 발전 잠재력과 구조 전환 전략 연구’ 등이 있다. 산업 전문가로 규제개혁위원회, 탄소중립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현재 국회철강포럼과 포스코경영연구원 에너지환경안전포럼의 전문가 위원을 맡고 있다. (이메일 주소 : emjung@kiet.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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