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반덤핑 예고가 ‘막차 알림’?…HR도 덤핑 역습에 흔들린다
수입산 열간압연강판(HRC)에 대한 반덤핑 예비판정이 임박한 가운데 철강업계는 후판 시장에서 이미 드러난 ‘시차 리스크’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 2월 중국산 후판에 반덤핑 예비판정이 내려진 이후 국내 가격은 일시적으로 반등했지만, 잠정관세가 실제 적용되기 전 대규모 수입 물량이 쏟아지면서 시황은 되려 다시 꺾였다.
예비판정이 ‘심리적 분기점’이 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수입 차단 효과는 잠정관세부터 나타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제도는 먼저 움직였지만 수입은 멈추지 않았고, 이 시차가 시장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오히려 관세 부과 전의 공백기가 수입업체들에 ‘막차 기회’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 후판이 보여준 '경고 시나리오'…열연도 같은 길 가나
철강업계에 따르면 후판은 예비판정 직후 가격이 급등했다. 수입대응재와 수입재 유통가격은 70만 원 후반대에서 80만 원 중후반대까지 톤당 10만 원 가까이 오르며 반덤핑의 효과가 반영되는 듯 보였다.
다만 예비판정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입업체들이 4월 24일부터 적용된 잠정관세 이전의 ‘틈새 시기’를 노려 저가 물량을 대거 밀어 넣었고, 4월 하순부터는 가격이 약세로 돌아섰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3월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9만1천 톤으로, 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예비판정 발표(2월 20일) 이후 수입이 빠르게 늘면서, 관세 적용 전 ‘막차 물량’이 국내 유통시장에 대거 유입됐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반덤핑 조치가 수입을 막은 게 아니라, 오히려 수입을 자극하는 ‘부스터’처럼 작용했다”고 말했다.
열연강판 시장도 비슷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4월 중국산 열연 수입은 8년 만에 최대인 20만 톤을 돌파했고, 유통시장에만 5만 톤에 가까운 물량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열연 오퍼가격은 한때 톤당 450달러 후반까지 떨어졌고, 국내 유통가격도 70만 원 초반대로 내려갔다. 특히 5월 초 환율이 급변하던 시점에 들여온 물량이 최근 시장에 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열연강판 반덤핑 조사에는 중국산과 함께 일본산 제품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유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중국산에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일본산 열연강판은 주로 냉연·컬러·도금 등 특정 수요처에 납품되는 반면 중국산은 유통 비중이 높고 가격 변동 폭도 커 국내 시황에 더 큰 영향을 준다.
◇ “예비판정이 기회가 된다”…시차 리스크, 열연의 변수로
반덤핑 조치는 일반적으로 세 단계로 진행된다. 산업부는 조사 개시 후 약 3개월이 지나면 예비판정을 통해 덤핑 여부를 판단하고, 이후 잠정관세 부과 여부를 고시한다. 마지막으로 최종판정과 관세 확정이 이뤄지는 구조다. 문제는 이 절차에 따라 단계마다 평균 3개월, 최대 5개월까지 시차가 생긴다는 점이다.
실제 후판의 경우 2월 20일 예비판정이 발표됐고, 잠정관세는 4월 24일이 돼서야 적용됐다. 예비판정 이후 두 달 넘게 수입 창구가 열린 상태였고, 이 기간에 수입업체들은 선적을 서둘렀다. 이에 수입 물량이 예상보다 빠르게 쏟아지면서 분위기는 다시 뒤집혔다.
이 같은 흐름에 업계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 관계자는 “예비판정은 가격 상승의 신호탄이 아니라, 저가 수입의 막차를 부르는 트리거”라고 지적한다. 수입업체 입장에서는 예비판정 발표 직후부터 잠정관세 부과 전까지의 기간이 마지막 ‘무관세 창구’가 되기 때문이다.
수입유통업체 관계자는 “3월 말~4월 초의 후판 수입량은 거의 ‘라스트찬스’ 수요에 가까웠다”며 “그 시점에 들여온 물량은 유통가격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내리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열연도 같은 흐름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국산 유통 전략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국산 가격이 반등 조짐을 보이더라도, 저가 수입재가 유입되면 시장의 가격 신호가 흐려진다.
제조사 관계자는 “시장에선 가격이 오를 조짐이 보여도, 수입재가 밀려오면 결국 눈치를 보게 된다”라며 “제품 가격은 동결되고, 유통업체도 매입을 미루면서 국산 제품이 설 자리를 잃는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예비판정 발표 전 대응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른 제조사 관계자는 “예비판정이 나오면 유통 심리가 흔들릴 수 있다”며 “국산 보호 전략을 선제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또 한 번 수입 저가에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차원의 제도 보완 필요성도 제기된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관세율보다 더 중요한 건 시점”이라며 “예비판정과 잠정관세 사이의 공백을 노린 수입이 반복되면, 반덤핑의 취지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후판에서 확인된 시차 리스크를 열연에서는 줄여야 한다”며 “제조사와 유통, 정부가 사전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이번 조치가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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