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운칠기삼(運七技三)과 SK 하이닉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운이 7할, 재주가 3할’이라는 뜻으로, 모든 일의 성패는 운이 7할을 차지하고, 노력이 3할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명말 청초 시대 포송령이 기담(奇談)을 모아 만든 ‘요재지이’라는 책에 등장한다. 오래 글공부를 하였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아내마저 도망가버린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대들보에 동아줄을 매고 인생을 끝마치고자 하였으나, 자신의 처지가 너무 원통한 나머지 옥황상제에게 가서 왜 자신보다 못한 선비들은 급제하고 자신만 매번 낙방하는지 따져 물었다. 이 말에 옥황상제는 곰곰이 생각하다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을 불러 술 대결을 시켰다.이윽고 술 대결이 끝나자, 운명의 신이 마신 잔은 7잔이었던 것에 반해 정의의 신이 마신 잔은 3잔에 불과했다. 이에 옥황상제는 세상은 정의대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불합리가 따른다며, 그러한 불합리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도 3할의 이치 역시 행해지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선비를 돌려보냈다. 세월이 흘렀다 하여 이 이치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실생활 속에 당연한 법칙처럼 작용하고 있다.성과급으로 1인당 1억 원 이상을 지급한 업체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려 3조 6천억 원의 성과급 잔치를 벌인 회사는 SK 하이닉스다. 반도체 호황이 이 같은 성과를 가능하게 했다. 이 회사 전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전자이다. 현대전자가 하이닉스로 사명을 변경한 후 SK로 인수되면서 SK 하이닉스가 됐다. 거대 부채기업이었던 하이닉스가 SK로 인수되어 천지개벽한 것은 운(運)과 기(技)가 따라준 결과다.반도체 하면 삼성전자가 먼저 떠오른다. 지난해 매출액이 333조 6,059억 원이었다. 영업이익은 43조 6,011억 원이었다. 동종 업체 SK 하이닉스는 매출은 따라갈 수 없으나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를 제쳤다. 영업이익이 47조 2,063억 원으로 규모에서는 졌지만, 실속 있는 경영을 했다. 이런 사상 최대 실적 바탕에는 과감한 선행 투자와 기술 개발이 주효했다. 더불어 인공지능(Al)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이라는 운(運)도 따라주었다.글로벌 거대 기업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 투자와 데이터센터를 늘리면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디(D) 램 수요가 폭증했다. 특히 세계 시장 점유율이 52∼70%인 고대역폭 메모리의 선전이 일등공신이다. 이 부문 매출이 1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회사는 HBM3 E(5세대·현 주력 제품)와 HBM4(6세대·차세대 제품)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고객 신뢰를 바탕으로 기술 우위는 물론이고 품질 검증과 생산 역량 강화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알찬 열매를 수확할 수 있었다. 기(技)도 작용했다.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지난 5일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치맥(치킨·맥주) 회동을 했다. SK와 엔비디아가 반도체뿐 아니라 바이오를 아우르는 AI 사업 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SK는 올해 사업 목표로 ‘AI로 일하는 제약사로의 발전’을 제시하는 등 바이오와 AI를 결합한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디지털트윈 등 다양한 AI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 업체와 손을 잡으면 그룹의 사업은 일취월장(日就月將)할 것이다. 글로벌 기업 입지도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기대된다.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5회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서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괴물 칩’이라고 명명하며 생산량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HBM이 진짜 큰돈을 벌여주는 사업임을 천명한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말처럼 운과 기가 함께 들어오고 있음을 직관한다. 회사가 소재한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는 지금 뜨거운 돈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거액의 성과급에 모처럼 지역경제에 부는 훈풍으로 표정 관리가 어려울 정도라니 우리 업계는 한없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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