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준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앞으로 5년 철강업 완전히 탈바꿈해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2021년 한해가 지나가고 2022년이 다가왔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세계 철강산업은 새로운 보호무역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탄소중립 이슈는 수십 년 간 철강산업이 경험하지 못했던 강력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환경문제에 취약한 철강산업으로서는 또 한번의 구조적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철강사 경영전략과 정부 산업정책에 대한 좀 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국내 금속소재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민동준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현재 철강금속 업계가 큰 위기를 맞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철강업계의 위기를 넘어서려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 둔화와 공급과잉 구조로 인한 수익성 한계화, 이윤압착 시대(Margin Squeeze)의 고착화, 디지털전환(DX)/기후 위기 등을 주요 구조적 원인으로 꼽았다.
특히 현재 철강 산업이 기술적 차별성을 강하게 요구받고 기후 위기와 인구 절벽선상에서 경쟁 구조화에 내몰리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들 문제는 비가역적 문제여서 새로운 경쟁력 강화와 산업적 고도화를 위한 선제적 전략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민동준 교수는 연세대 공과대학 학장과 행정대외부총장, 주요 철강사의 사외이사를 맡았고 명예특교수로 있으면서도 지금도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포스코 석좌교수와 함께 지난해 정부가 출범시킨 철강경쟁력강화TF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용융환원공정인 파이넥스(FINEX) 공정과 하이브리드(Hybrid) 수소제철 공정의 개발을 비롯한 이온성 용융체의 고온물리화학 분야의 세계적으로 탁월한 연구업적의 공로로 일본철강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된 바 있다.
그는 야금학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달성함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에도 능통하여 금속산업과 시장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듣는 인물이다. 화창한 날씨 속 5월의 어느날 연세대 신촌캠퍼스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Q. 한국 철강업계가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는데…
A. 철강업계가 2014년 이후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좋을 때였다. 물론 어렵기도 했지만 당시 철강 산업 경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이제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이제 우리 옆에 있을 거다. 그러면 철강 산업이든 조선 산업이든 산업 부문은 기업 간의 전투는 아닐 것 같다. 국가 간 전투, 메가 컴피티션(mega-competition)이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지금을 봐라. 미국 반도체 뒤에 미국 정부가 있고, 일본 반도체 뒤에 일본 정부가 있고, 대만 기업 뒤에 대만 정부가 있고, 중국 기업 뒤에 중국 정부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떤가? 반도체 1등이라는 S사는 기업 혼자 단기필마로 가서 지금의 위치로 끌어올렸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 정부의 스탠스가 너무 안이하다. 국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없다. 우리나라 산업은 방치가 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기업의 책임도 뒤따른다. 철강 A사가 벌어들이는 매출, 이익 규모가 지금과 2003년이 똑같다. 2003년의 화폐가치와 지금의 가치가 같은가? 사실은 깎여 나간 거다. 그런데 이 사실에 대해서 철강사 누구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A사가 먹고 사는 강종들, 이미 다 20년 전에 개발한 것이다. 2014년부터 지금까지 되짚어 보면 새로운 강종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철강사들이 마케팅 중심의 전략을 펼쳐왔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다. 원료 계약 조건에서 단가 낮추고, 설비를 가혹하게 돌린다. 즉 항상 높은 가동률에 의한 가격 중심의 전략, 가성비 전략으로 보낸 10년의 대가가 지금 오늘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본다.
Q. 최근 미국 관세 부과 등과 같은 이슈에 미리 대응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미국이 철강 관세 부과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미국이 철강 2,500만 톤 수입하는데, 그게 줄어들 수 있는 건가? 미국이 증설하지 않는 한 줄어들 수 없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2천만 톤을 증설할 수도 없다.
관세 이슈가 불거지고 나서 한국은 관세 때문에 미국 시장에 못 들어가나 했는데 (관세로 인한 미국 철강 가격 상승 때문에) 단가 차이가 별로 없어졌다. 그러니 다시 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것 아닌가 싶다. 결국 공급이 부족한 미국 시장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관세가 아니다.
Q. 그럼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
A. 철강금속 분야 종사자가 직간접적으로 약 1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100만 명이 앞으로도 철강금속 분야에서 먹고 살 수 있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전략을 국가나 리딩 업체 CEO가 드라이브를 걸었을 때 충분히 따라올 수 있느냐가 문제다. 가령 포스코 CEO가 중장기적으로 큰 전략을 짜면 다른 조직에서 이를 잘 맞춰갈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이는 국가 정책도 마찬가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같은 정교한 팀웍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모든 노력이 자원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철강이나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주요 산업분야는 기업 간의 전투장이 아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메가 컴피티션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민간이 열심히 하면 정부가 최대한 돕겠다”고 하는 수준에 그쳤다. 너무 안이했던 대응이다.
Q. 철강 내수 기반이 너무 약화되고 있다. 방법은 없을까?
A.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최고경영자(CEO)들이 이런 판단을 내리곤 한다. ‘A 강종이 안 팔리네? 적자야? 없애버려.’ 그런데 그 회사가 시장에서 그 부분을 철수해버리면 그 지대는 진공 지대가 된다. 물량이 적다고 해서, 가격 경쟁력이 나쁘다고 해서, 계속 그런 부분을 놔버리면 그곳에 진공이 생기는데 이 진공에 누가 빨려 들어오겠는가. 다 알만한 나라들이 들어오지 않았나. 그 나라들이 와서 하나씩 하나씩 차지한다. 만약 우리나라 산업에 있는 소재, 그 소재의 엔드 유저(End user) 기업들이 중국 소재에 적응을 하게 되면 우리 산업계는 절단 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강관사가 마진 적고, 설비 남아돌고, 가동률이 40~50%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오직 원소재 가격에서 모든 게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중국 거 갖다 쓰지 않겠나? 우크라이나 것 왜 못 쓰나? 다 갖다 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해외로 보내는 수출 물량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의 본질을 논할 때, 철강사와 국내 수요가들과의 관계를 외면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 철강사들이 수요 업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은 건가 라는 것에 근본적 질문이 있다.
Q. 한국 철강 생태계에 대한 걱정에 공감한다. 상공정, 하공정 중 어느 공정의 업체가 잘 나간다고 해서 생태계가 건강한 것은 아닌 것 같다.
A. 예전에는 큰 풍부한 숲이었다. 거기에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었다. 올망졸망한 잡목도 있고. 그 생태계에서 서로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을 했다. 그런데 지금 하나씩 둘씩 죽어 나가는 거다. 이렇게 죽어 나가고 나면 그 숲은 초원 지대 되는 거고 나중에 사막 되는 거다. 지금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철강업계가 연관 업체들, 조선, 자동차, 플랜트, 건설 시장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인지. 철강사들이 수요가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진심을 갖지 않으면 나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그동안 산업정책을 제안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을 것이다. 어떤 것들을 제안했는가?
A. 나는 철강 산업을 바라볼 때 대기업이 아니라 지역 경제 관점에서 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포항, 광양, 당진 등 철강 산업 단지에서의 지역 경제를 어떻게 개선시킬까로 접근하라는 것이다. 포항은 인구 50만 명이 깨진 지 꽤 됐고, 광양도 인구가 안 늘고, 당진도 그렇다. 잘못하면 미국 피츠버그처럼 되는 것이다. 물론 피츠버그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웨스팅 하우스 등이 있어서 철강산업 의존도가 우리보다 떨어진다.
그러면 예를 들어 포항의 경우 산업 구조조정을 할 때 정부가 일부 보조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왜냐하면 해당 기업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는 게 아니고, 지역경제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력 시스템이라든지 이런 것들 같은 경우는 당연히 지역 경제 차원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알아서 하라’라는 태도를 취하면, 시장이 현재 기업 다 목 조르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걸 할 수 있겠나?
포항에서 수소환원제철이 시도되고 있는데, 그 옆에 연료전지 공장 있고, 이차전지도 있으니까 잘하면 울산하고 포항을 묶어 컴플렉스(Complex)를 만들어서 제철과 석유화학을 묶어서 가볼 수 있다. 또 조선소가 있으니까 같이 묶어서 큰 새로운 형태의 권역별 산업공단을 만들자는 얘기들을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소 산업과 관련된 특별법 등을 만들 수 있다. 현재 수소환원제철을 당장 수천만 톤 하는 게 아니라 30만 톤, 50만 톤 하는 거니까 일정 정도 정부 보조금을 주는 조항을 넣고, 그렇게 해서 나온 그린스틸로 풍력발전소를 짓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린 소재 시장에서의 업력, 트랙 레코드를 쌓아야 한다. 이걸 안 쌓으면 당한다는 것을 그동안 수없이 경험했다.

Q.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 이야기가 구체화 되는 건가?
A. 전기로사 고로사 따로가 아니라 모두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구 사항을 보면 ‘전기값이 너무 비싸요’ 이런 가망 없는 얘기를 한다. 어떻게 철강산업만 전기를 싸게 해주겠는가? A사든 B사든 철강 집단들이 뭘 보여줘야 한다. ‘미국이 지금처럼 행동하고, 일본제철은 미국으로 진격을 하고 있는데, 우리 이런 것 하겠다”며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 철강업계는 그런 그림이 없다.
우리 철강산업이 해야 될 일은 매우 분명하다. 시간은 한 5년 남았다고 보는데, 이 5년 동안에 뭔가 변태를 해야 한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Q. 추가로 철강산업에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해달라.
A. 내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은 사람이다. 기업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인사 정책이라는 것이 배운 사람 데리고 와서 트레이닝시켜서 한 15년 쓴 후 정리하는, 소위 일회성이라고 하는, 소모적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밑바탕엔 ‘얼마든지 우리 회사에 올 사람이 많다’라는 가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 모든 CEO분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그 가설은 이미 깨졌다는 것이다.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AI 등. 인재 전쟁이 벌어졌는데 우리가 거기서 좋은 사람을 얼마나 데려올 수 있을까. 많이 데려오려면 철강 산업이 화장을 해야 한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30년 후에 철강 산업이 이렇게 된다, 우리 이렇게 될 거다’ 하는 비전을 만들고 보여줘야 한다.
■ 민동준 교수는…

도쿄대학 대학원 금속공학과 박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금속공학과 석사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 학사
1990~1995 산업과학기술연구소 (RIST) 책임연구원
2001~ 연세대학교 금속공학과 정교수
1997~2012 현대제철 사외이사
2002~ 포스코 석좌교수
2012~2014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원 원장, 공과대학 학장
2015~2016 심팩메탈로이 사외이사
2017~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2018~2019 연세대학교 행정대외부총장
2018~2020 심팩 사외이사
2018~ 포스텍 철강대학원 겸직교수
2019~ 동국제강 사외이사
2020~ 일본철강협회 명예회원
2020~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이사
2006 제7회 철의 날 대통령 표창
2008 대한금속재료학회 운동석상
2009 교육과학기술부장관 표창
2010 대한금속재료학회 덕천 학술상
2011 일본철강협회 니시야마상
2015 IOM3 Awards Adrian Normanton Medal
2016 대한금속재료학회 POSCO 학술상
2017 제18회 철의 날 동탑산업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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