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충격에 서방 알루미늄 제련소 재가동…글로벌 공급망 재편 가속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알루미늄 공급 불안이 심화되면서 수년간 가동을 멈췄던 미국과 유럽의 알루미늄 제련소들이 잇달아 생산 재개에 나서고 있다. 중동 지역 생산 차질과 수입 의존도 심화, 알루미늄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그동안 채산성 문제로 폐쇄됐던 서방의 제련설비에 재가동 기회가 생긴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서는 매그니튜드7 메탈스(Magnitude 7 Metals)가 미주리주 뉴마드리드(New Madrid) 알루미늄 제련소의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알루미늄 업체 노르스크 하이드로(Norsk Hydro)가 슬로바키아 합작 제련소 슬로발코(Slovalco)의 부분 재가동을 결정했다.
두 제련소는 낮은 알루미늄 가격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전력비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수년간 유휴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최근 중동발 공급 충격으로 알루미늄 가격과 지역 프리미엄이 상승하고 미국과 유럽의 수입 의존 문제가 부각되면서 생산 재개 여건이 개선됐다.
하이드로는 슬로바키아 정부와 슬로발코 제련소 재가동을 위한 장기 전력 공급 및 탄소비용 보상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슬로발코는 연간 17만5,000톤의 생산능력 가운데 7만5,000톤 규모를 우선 재가동하고 올해 4분기부터 생산을 재개할 예정이다.
슬로발코는 하이드로가 지분 55.3%, 중부 유럽계 투자회사 펜타 인베스트먼트 그룹이 44.7%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 전력 가격 급등으로 손실이 확대되면서 알루미늄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슬로발코는 재가동을 위해 약 1억유로를 투자하며, 이를 통해 2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은 슬로바키아 국영 수력발전업체 보도호스포다르스카 비스타브바와 체결한 10년 장기계약을 통해 공급받는다.
유럽연합(EU) 배출권거래제(ETS)에 따른 간접 탄소비용 보상도 재가동을 뒷받침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보상안은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나머지 연간 10만톤 규모의 생산설비는 2030년 이후 ETS 제도와 추가 전력 공급 계약에 따라 재가동 여부가 결정된다.
미국 뉴마드리드 제련소도 올해 말까지 연간 7만5,000톤 규모의 전해조 생산라인 한 개를 재가동할 계획이다.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오는 2027년 생산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뉴마드리드 제련소는 연간 26만3,000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16년 가동을 중단한 뒤 2018년 생산을 재개했으나 알루미늄 가격 약세와 경영난으로 2024년 초 다시 문을 닫았다.
이번 재가동에는 미국의 알루미늄 수입관세와 가격 상승이 주요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수입 알루미늄에 50%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 중서부 지역 알루미늄 프리미엄은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에 톤당 2,375달러를 더한 수준까지 상승했다.
LME 알루미늄 가격도 2024년 초 톤당 2,200달러 수준에서 최근 3,165달러까지 올랐다. 국제 가격 상승과 높은 지역 프리미엄으로 미국 내 알루미늄 생산의 채산성이 과거보다 개선된 셈이다.
서방 제련소 재가동의 직접적인 배경은 중동 지역의 공급 차질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걸프 지역 알루미늄 생산은 제련소 피격과 물류 제약으로 연간 환산 약 200만톤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의 알루미늄 생산도 정부가 설정한 연간 4,500만톤의 생산능력 상한에 근접해 있어 단기간 내 공급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급 부족을 메우기 위해 LME 창고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장외 물량을 포함한 전체 알루미늄 재고는 40만톤 아래로 감소했다.
중동발 공급 충격은 미국과 유럽이 알루미늄을 해외 공급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드러냈다. 유럽은 에너지 가격 상승 이후 역내 1차 알루미늄 생산능력의 절반가량을 잃었으며, 최근에는 모잠비크 모잘(Mozal) 제련소 폐쇄와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까지 겹쳐 공급 부담이 커지고 있다.
슬로발코와 뉴마드리드의 재가동 규모는 각각 연간 7만5,000톤으로, 두 제련소가 공급할 초기 물량은 총 15만톤이다. 글로벌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제한적이지만, 미국과 유럽의 산업 기반 유지와 수입 의존도 완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서방 제련소들이 장기간 생산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향후 중동 정세가 안정되고 걸프 지역 제련소의 생산과 물류가 정상화될 경우 최근의 가격 상승분과 지역 프리미엄이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공급 확대도 주요 변수다. 중국은 알루미늄괴 대신 봉과 선재, 알루미늄박 등 반제품 수출을 늘리며 서방의 공급 부족에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알루미늄 제품 수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9.4% 감소했지만, 올해 1~5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5월 수출량은 59만5,000톤으로 2024년 11월 이후 가장 많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투자를 기반으로 신규 알루미늄 제련소 가동이 확대되고 있다. 연간 27만톤 규모의 주완(Juwan) 제련소는 올해 1월 완전 가동에 들어갔으며, 연산 50만톤 규모의 아다로(Adaro) 합작 제련소도 최근 미국과 한국으로 첫 수출 물량을 선적했다.
아다로는 향후 생산능력을 연간 150만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전체적으로는 향후 수년간 연간 1,000만톤 이상의 신규 알루미늄 생산능력이 추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이터 칼럼니스트 앤디 홈은 중동발 공급 충격으로 서방의 유휴 알루미늄 제련소에 단기적인 재가동 기회가 열렸다고 분석했다. 다만 뉴마드리드와 슬로발코의 생산 규모가 글로벌 공급 구조를 바꿀 수준은 아니며, 중장기 가동 여부는 중동 지역의 생산 정상화와 알루미늄 가격, 미국과 유럽의 정책 지원, 인도네시아의 신규 제련능력 확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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