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등은 잠깐, 회복은 요원”…열연강판, 1년 동안 80만 원 박스권
국내 열연강판 시장이 좀처럼 숨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제조사 인상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반덤핑 공조로 수입재 유입이 줄었으나, 유통가격은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국내를 포함해 글로벌 반덤핑 조치로 중국산 수입재는 감소했지만, 내수 회복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 건설·조선·자동차 등 전방산업의 회복 속도 차가 가격 반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 인상은 있었지만…‘80만 원 중반대의 벽’
국내 열연강판 가격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본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0월 현재 유통가격은 톤당 82만 원 내외로, 지난해 10월과 사실상 같은 수준이다. 지난해 9월 77만 원까지 떨어진 이후 반덤핑 조사 개시와 예비판정의 영향으로 함께 소폭 반등했지만, 1년째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제조사가 하절기 이후 제품 가격을 잇달아 인상했지만, 유통시장은 냉담한 모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등 저가 수입재는 줄었지만 수요 자체가 극도로 위축돼 가격을 올릴 명분이 없다”며 “실수요가 돌지 않으니 인상분을 전가하기보다 재고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출하량이 줄고, 운송비와 금융비용이 쌓이는 상황에서 매입단가를 높이면 역마진이 날 수밖에 없다”며 “유통시장 전반이 방어적 태세”라고 설명했다.
이에 유통시장은 제조사 인상 신호를 ‘정책적 가격’으로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반덤핑 조치로 수입재 유입은 줄었지만, 내수 기반이 여전히 바닥권에 머물러 실질적인 전이 효과가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업황 회복 요원한 건설시장
이처럼 국내 유통시장이 정체된 가장 큰 원인은 수요 부진이다. 특히 건설산업은 수주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사 실적과 고용이 줄어드는 ‘수주-기성 괴리형 침체’에 빠져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건설수주는 17조 원으로 전년 대비 36.9% 증가했지만, 실제 공사 실적(기성)은 11.4조 원으로 –13.7% 감소했다. 신규 발주는 늘었지만 착공률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공공 부문에서는 도로·수력·LNG저장시설 등 토목 프로젝트가 상승을 이끌었고, 민간에서는 수도권 주택 수주가 88.1% 급등했다. 다만 현장 착공 지연과 안전규제 강화로 공사 진행은 더딘 모습이다.
8월 건설업 취업자는 191만 명으로 전년 대비 6.5% 감소하며 16개월 연속 줄었다. 공공 토목과 민간 건축 모두 위축된 영향이다.
이에 건설 경기의 정체는 열연강판 수요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택·건축용 건설강재 수요가 줄고,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조차 자재 투입 시기가 지연되면서 유통 거래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 자동차는 순환적 호황, 조선은 전환기 성장
건설 부진과 달리 자동차·조선은 단기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두 산업 모두 구조적인 제약을 안고 있어, 열연강판 등 철강 수요를 폭넓게 끌어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동차산업은 9월 기준 생산 8.9% 증가한 가운데, 내수 20.8%, 수출 11% 성장을 기록하며 3개월 연속 ‘트리플 플러스’를 이어갔다. 완성차사 신차 효과와 부품 수급 안정이 맞물리며 생산은 36만4천 대를 넘어섰고, 하이브리드와 SUV 신모델이 내수 회복을 견인했다. 수출도 북미 둔화를 유럽·중동·아시아 시장 다변화로 상쇄했다.
다만 구조적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다. 완성차사의 미국 현지 공장 확대와 KD(반조립) 수출이 늘면서, 국내 생산 증가율은 내년부터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산업은 고부가 선종 중심의 ‘전환기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세계 발주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음에도, 한국은 25.1%의 글로벌 점유율로 중국(51.8%)에 이어 2위를 유지했다. LNG선·VLCC·컨테이너선 중심의 건조량이 늘었고, 친환경·암모니아·메탄올 추진선 등 신기술 선박 비중이 확대됐다.
◇ 반덤핑이 만든 ‘글로벌 보호무역의 벽’
국내 열연 시장의 또 다른 변수는 반덤핑 조치다. 산업통상부 무역위원회는 2024년 12월 현대제철의 제소를 받아 2025년 3월부터 중국·일본산 열연강판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7월 예비판정에서 덤핑이 인정됐고, 9월 23일부터 잠정관세가 부과됐다.
중국산은 28.16~33.10%, 일본산은 31.58~33.57% 수준으로, 2026년 1월 22일까지 적용된다. EU와 베트남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일본산 열연에 20~30%대 관세를 확정하면서, 주요 교역국이 동시에 보호무역 강화로 기울었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가격 안정과 유통 정상화 효과가 기대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동차·가전·기계 등 수요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 차단으로 내수 공급망은 안정될 수 있으나, 원가 상승분이 하공정에 전이되면 산업 전반의 체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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