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 내몰린 국내 철강 유통 '팔수록 손해' …지난해 성적표 살펴보니
지난해 국내 철강 유통업계가 줄줄이 침체를 면치 못했다. 역대급 건설경기 침체 속 수요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저가 수입재까지 국내 시장을 지속 공략하면서 성적표도 곤두박질친 모습이다.
본지가 철강 유통사 119개사의 경영 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이들 총매출액은 총 17조4,169억원으로 전년 대비 7.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106억원으로 35.7% 줄었으며, 특히 순이익은 75.1% 급감한 366억원에 그쳤다.
매출 대비 수익성 축소가 더욱 두드러진 모습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국내 유통사 영업이익률도 1.2%에 머무르며 전년(1.7%) 대비 0.5% 포인트(p) 하락했다. 순이익률 역시 0.8%p 떨어진 0.2%로 쪼그라들며 사실상 업계 전반이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매출만 줄었다는 건 차라리 나은 편"이라며 "가격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젠 물건을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열연 유통, 가격 붕괴에 줄줄이 적자- 생존 전략 없이는 반등 어려워
국산 열연강판 유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유통가격 하락과 출혈경쟁, 수요 침체가 겹치면서 유통업계가 줄줄이 적자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열연강판 유통·가공을 주력으로 하는 주요 12개 사의 2024년 매출은 총 1조9,3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8% 감소했다. 문제는 수익성 악화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688억 원 흑자에서 927억 원 적자로 전환됐고, 당기순이익은 389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81.8% 급감했다.
적자 전환 기업도 속출했다. 2023년 흑자를 기록했던 세아L&S, 한일철강, 동양에스텍 등 다수 기업이 2024년에는 적자에 빠졌고, 문배철강과 지오스틸은 수백억 원 단위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특히 지오스틸의 경우 2023년 15억 원 흑자에서 2024년 80억 원 적자로 전환되며 유통가격 하락의 직접 피해를 입었다.
국내 열연강판 유통가격은 수요산업 부진과 함께 수급 불안 등이 겹치며 하락했다. 지난해 건설과 기계 등 전방산업에서 실수요 회복이 지연되면서, 유통시장도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제로 철강 제조사들의 내수 판매량도 연초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고, 유통업체들은 재고 회전율 저하에 시달렸다. 지난해 상반기 열연강판 월평균 판매량은 55만9천 톤(본지 집계 기준)을 기록했으나 하반기에는 52만 톤대로 줄었다. 특히 연초 판매량은 60만 톤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하반기 이르러 50만 톤을 간신히 수성하는 모양새였다.
유통업계의 출혈경쟁도 시황 악화를 더욱 부추겼다. 재고 회전을 위해 가격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거래 가격은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여기에 저가 수입재까지 시장에 유입되면서 유통가격은 더욱 압박을 받았고,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거래처 이탈을 막기 위해 납품을 이어가는 업체들이 적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 냉연유통, 길고 긴 부진의 터널 - "판넬 수요 감소 두드러져"
국내 냉연 유통업계의 실적이 감소하며 침체가 부각됐다. 다소 암울한 결과에 업계는 내수 침체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다.
2024년 국내 냉연유통 41개사의 합계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은 전년대비 각각 3%, 17.8%, 18.1%의 하락분을 거두며 모두 감소했다. 심화된 부진의 원인으로는 국내 건설경기 부진이 지목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역대 최악이다 보니 주문 물량이 약 40% 감소했다"며 "지붕재 등으로 활용되는 판넬 수요가 특히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제조사의 부진은 유통업계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현재 포스코와 현대제철이라는 양대 고로사의 업황 부진이 이어지며 예년보다 많은 물량이 유통업체에 공급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유통업체의 마진율은 수요부진으로 인해 1~2% 수준으로 형성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 과도한 공급으로 인한 가격 경쟁까지 행해진다면 출혈경쟁으로 인한 마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강관 유통, 고금리에 재무건전성 악화 - 제품 가격 하락·부대비용 상승에 수익성 악화
강관 유통업체들이 대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판매 경쟁력이나 자금 운영이 좋지 못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정리하려는 업체들이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강관 유통업계 8개사의 지난해 매출액을 살펴보면 총 4,084억2,300만원으로 2023년 같은 기간 4,946억2,700만원 보다 17.4% 감소했다. 영업이익의 경우 77억3,700만원으로 전년대비 13.3%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76억1,100만원으로 2024년 60억1,100만원 보다 26.6% 증가했다.
지난해 대형 강관 유통업체와 소형 유통업체들의 구매력의 차이로 인해 제품 판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판매 경쟁력이 어느때 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소형 유통업체들의 제품 판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업체의 경우 사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는 업체들은 고금리 상황에서 판매를 통한 수익성으로 버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건설산업 등 전방산업의 악화로 단순 제품 판매로 매출을 올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업계는 단일 제품 판매보다 다양한 사이즈를 비롯해 C형강 등 고객사의 주문에 대응해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이는 물류비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제품 사이즈 주문을 원스톱(One Stop)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수요 업체의 가공 설비 도입을 늘리고 있다. 자체적인 가공 설비 도입으로 인력 재배치와 재고조정을 위함이다. 가공 물량도 줄고 있는 가운데 유통업계는 인건비를 비롯해 전기비용, 물류비용까지 증가해 가공 사업을 통한 수익성을 내는데 이전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일환으로 구조관 업계는 C형강 및 농원용강관, 포스맥강관 등 다양한 제품을 확보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C형강의 경우 건설 산업에 집중돼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신재생 에너지 활성화에 따라 국내 태양광 수요도 동반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유통업체들은 1세 경영에서 2세 경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사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려는 모습이다. 2세 경영인이 사업을 물려받지 않고 본인만의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유통업체들은 제조사 영업직원에게 사업체를 양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 봉형강 유통, '소수점 이익률' 추락- 원료부터 제강·유통까지 모두 1%대 안팎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에 봉형강 유통업계 수익성이 3년 연속 급감하면서 이익률도 1% 선 밑으로 추락했다.
국내 봉형강 유통업체 20개사 경영실적을 집계한 결과, 지난해 이들 매출액은 1조9,512억원으로 전년 대비 23.9%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영업이익은 58.0% 급감한 122억원에 그쳤다.
역대급 건설경기 침체로 깜깜이 시황 속 유통시세가 급전직하하면서 유통업계 수익성도 바닥으로 치달았다.
봉형강 대표 품목인 국산 철근 유통시세(SD400m, 10mm)는 지난해 초 톤당 80만원에서 출발했으나, 최대 성수기 2분기부터 급락하면서 60만원 중반대로 떨어진 바 있다. 이후 제강사들의 전방위 인상 기조로 지난해 3분기 80만원을 일시 회복하기도 했지만 이내 재차 70만원 선 밑으로 급락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들 20개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0.6%로 전년(1.1%) 대비 0.5% 포인트(p)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본지가 집계한 철스크랩 유통업계 평균 영업이익률(0.7%)과 비교하면 소폭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모습이다.
지난해 △대한제강 △한국철강 △한국특강 △한국제강 △환영철강공업 △와이케이스틸 등 전기로 제강 6개사의 평균 영업이익률도 전년 대비 7.1%p 급락한 1.3%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원료부터 제강·유통까지 모두 1% 안팎의 수익성에 그친 한 해였다.
지난해 봉형강 유통 20개사 가운데 영업손실을 기록한 업체는 총 7개사로 이 중 적자 전환된 업체는 5곳으로 집계됐다. 그 외 2곳은 각각 적자 확대를 기록했다.
한편,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건설경기 침체에 올해 실적은 지난해보다 더욱 저조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퍼지고 있다.
실제 2021년 1,100만톤대에 달했던 국내 철근 총수요는 건설경기 침체로 지난해 780만톤대로 급감한 뒤 올해 600만톤대 진입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국내 철근 총 생산능력 1,200만톤 대비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 STS 유통, '빨간불' 넘어 '블랙아웃' 위기- 시황 침체 속 수입산 출혈경쟁 지속
스테인리스(STS) 유통업계는 대다수 업체가 수익성 악화를 경험하면서 사업계속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매출 부문에선 업체 간 합병으로 총매출 감소가 가려진 효과가 발생한 가운데 수익성은 그럼에도 눈에 띄게 악화된 것이 확인됐다. 이에 업계의 적자 판매 상황이 전년보다도 더욱 심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2개 주요 STS 유통사의 2024년 총매출은 1조 8,408억 4,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0.8% 소폭 증가했다. 7개 업체가 전년보다 매출 규모가 줄어든 가운데 영광스텐이 와이지에스(YGS)에 인수합병되며 매출 규모가 5배 이상 급증한 영향으로 업계 총매출이 마이너스로 전환되지 않게 됐다.
반면 수익성 부문은 와이지에스를 변경 편입하더라도 상황이 좋지 못하다. 2024년 12개 STS 유통사의 영업손실은 356억 2,100만원, 순손실은 801억 8,900만원으로 각각 전년보다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이는 국내외 경기 침체로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중국 및 동남아시아산 저가 수입 증가로 출혈 경쟁만 심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2024년 하반기부터 국내 기준금리 인하가 진행됐음에도 철강 수요 확대로 온기가 퍼지지 않으면서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가 개선되지 못했다.
올해 상반기는 더욱 암울한 실적 전망이 예고됐다. 국내 STS 밀과 해외 STS 생산·수출업계가 공급 가격을 올린 가운데 국산과 수입 STS 유통 가격은 지난해 연말 가격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 내에선 급격한 실적 악화를 경험한 2023~2024년보다 올해 실적이 더욱 좋지 못할 것이로 전망하고 있다. 베트남산 등 저가 수입 급증 문제도 단기 개선되기가 어렵단 지적이다.
■ 특수강봉강 유통, 저가 수입재 잠식에 수익성 악화- 수요 감소 속 중국산 수입재 확대
건설업과 제조업 등 주요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인해 지난해 특수강봉강 유통업계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강봉강 유통 26개사의 2024년 실적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매출액은 1조5,780억7,200만원(동화특수강 감사의견 거절)으로 전년 대비 4.9% 감소했다.
지난해 특수강봉강 제조업체 6개사의 매출액이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한 것에 비하면 유통업계의 경우 상대적으로 매출액 감소 폭은 적었다.
용진스테코와 대진, 영등포특수강과 동북특수강한국을 제외한 전 업체의 매출액이 감소했다. 특히, 탄소강보다는 STS봉강과 금형공구강 비중이 높은 업체들의 매출액 감소 폭이 컸다.
매출액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반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 402억1,800만원, 96억7,300만원으로 전년 대비 19.5%, 65.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한립과 한립특수강, 한립금형강, 명진금속, 이스트밸리티앤에스, 계산특수강, 이산특수강, 유일특수강이 모두 손실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이 증가한 업체는 티플랙스와 와이디피, 성은스텐레스, 신창특수강 등 4개사에 불과했다.
당기순이익은 한립과 한립특수강, 동아특강과 한립금형강, 명진금속, 이스트밸리티앤에스, 계산특수강, 이산특수강, 유일특수강은 손실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이 증가한 업체는 티플랙스와 신창특수강 뿐이었다.
특수강 유통업계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이유는 저가의 중국산 수입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특수강봉강 수입 물량은 72만1,175톤으로 74만5,870톤을 기록했던 2023년 대비 3.3% 감소했다. 반면 중국산 수입 물량은 64만9,803톤으로 64만7,305톤을 기록했던 2023년 대비 0.4% 증가했다.
전반적인 수요 감소 속에서도 중국산 수입재가 증가하면서 지난해 내내 특수강봉강 유통가격은 약세를 보였고, 이는 유통업계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원인이 됐다.
특수강봉강 유통업계에서는 올해에도 전반적인 수요산업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트럼프 리스크로 인해 중국산 수입재의 영향력이 강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비록 중국 정부가 철강 감산조치를 발표하기는 했으나 중국 철강업계가 미국의 관세를 피해 아시아 시장에 물량을 집중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주의 강화로 인해 단기간 내에 시황이 살아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중국산 수입재가 쏟아질 경우 단순한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고, 국내 특수강 산업 기반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특수강봉강 유통업계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통해 수요를 견인하는 동시에 중국산 수입재에 대한 수입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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