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전기료와 피눈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도 가능한 위험을 알고도 대비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우리의 삶 중에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그리고 심각한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이 어리석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 지금도 어디인가에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피해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통탄해도 해결책이 없다. 자신들 잘못은 자신들이 책임지는 것이 이치에 맞다. 타인의 눈에까지 눈물 나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 도마 위에 올라 지탄받았었다. 공기업과 사기업이 대비되는 것은 경영자의 책임에서 뚜렷하다. 사기업은 오너체계이다. 경영시스템은 경제성에 중점을 둔다. 만약 시스템이 잘못되어 비용이 발생하면 전적으로 경영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공기업은 그렇지 않다. 비용이 발생해도 책임이 덜하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것도 관심 밖이다. 포장만 그럴듯한 전시 경영이 짙다. 경영을 잘못해서 비용이 발생해도 흠결을 따지지 않는다. 임기를 채우는데 문제없는 ‘철밥통’이 공기업 경영자이다.
특히 한국전력의 방만 경영은 정평이 나 있다. 공기업 중 최고이다. 총부채가 무려 204조 원(지난해 3분기 기준)이 넘는다. 한해 이자로만 4조 원이 나간다. 아무리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부실이 치명적이다. 텅 빈 곳간을 채우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영이 이렇게 악화한 원인은 분명하다. 해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이 한 예이다. 사기업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임금 반납을 불사하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는 것이 상식적인 대처다.
성과를 낸 사람에게 지급하는 보상이 성과급이다. 이러함에도 적자를 낸 기업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과 11개 자회사들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임직원들에게 지급한 성과급은 2조 3,868억 원에 이른다. 한해 이자만 4조 원 이상을 내는 기업이라고 믿기지 않는 행태이다. 이 같은 사실에 국민의 비판이 거셌다. 한전의 경영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다. 전기료를 예민하게 생각하는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부실이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컸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특히 산업용 전기료의 상승은 기업 존폐를 좌우할 정도로 심각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1월 제조업 112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평균 전기요금 납부액이 2022년 481억 5,000만 원에서 지난해 656억 7,000만 원으로 36.4%나 증가했다. 매출액 차지 비중은 7.5%에서 10.7%로 높아졌다. 산업용은 최근 3년 동안 1,05.5원에서 1,85.5원으로 80.0원(75.8%)이나 급등했다. 이에 업체들은 숨이 턱턱 막힌다. 기막힌 현실을 마주한 업체들의 한숨이 강물처럼 깊은 이유다.
전기 사용이 많은 우리 업계가 최고 피해자라는 사실이 억울하다. 전기로 제강사는 건설 산업 부진과 함께 경영 악화 주범이 전기료이다. 합금철과 주물업체는 사업 존폐의 갈림길에 섰거나 아예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업체도 있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처절하다. 연민(憐憫)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상황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나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업계가 요구하는 수요에 맞는 계절·시간대별 요금제 개선, 부하율이 안정적인 업종에 대한 별도 요금제, 산업용 전기 기본요금 부과 방식 개선 등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전이 지난해 영업이익 8조 3,000억 원으로 4년 만에 적자를 탈출했다. 2023년부터 이어진 네 차례 전기요금 인상이 일등공신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대가이다. 뼈를 깎는 자구노력은 미흡했다는 지적에도 성과에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심히 못마땅하다. 서두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을 언급했다. 현실을 보면 이것이 미련한 행동으로만 취급할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도 다음에 일어날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수습이 우선돼야 한다. 해외로 이전한 어느 합금철 업체를 보면 더욱 간절한 생각이다.
60년 가까이 주물업을 했지만 전기료 때문에 이처럼 힘든 적이 없었다는 어느 노(老) 사장의 푸념이 공감이 간다. 그는 “매달 30억 원 매출 중에 전기료로 5억 원 이상 나간다. 최근에는 발주량도 30% 이상 줄어 죽지 못해 겨우 경영을 이어간다.”라고 말했다. 지난 2년 사이 주물업체 중 10%가량이 전기료 및 인건비 상승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뿌리가 송두리채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원인 제공자인 한전은 남의 일인 양 관심이 없다. 원통하고 답답한 마음에 많은 경영자들이 원망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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