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직장을 잃는 악몽(惡夢)

가끔 황당한 꿈을 꾼다. 군대를 제대하고 한참 지났는데 입대하는 꿈을 꾸고,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시험을 치르는 꿈을 꾼다. 직장을 해고당하는 꿈은 가위눌림보다 무섭다. 삶의 고비마다 겪었던 일들이 강박 관념이 되어 꿈으로 나타난다. 특히 직장을 잃는 꿈은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 우리 주위에는 출근하고 싶어도 못하는 실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타인의 아픔을 이해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실직을 경험한 사람만이 직장의 소중함을 잘 안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평소 직장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직장을 잃는 사람이 많다. 경영실적이 좋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폐업 때문일 수도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도 사직한다. 모두가 불운하다. 직장은 가정을 지키는 최우선 수단이다.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는 직장을 다녀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최근 군산시 경제가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한국GM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가 처참하다. 2018년 2월 군산공장 철수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후 지역경제는 피폐해져 동력을 잃었다. 한때 한국GM 군산공장에는 2,000여 명의 직원들이 근무했다. 협력업체도 1차 35곳, 2차 100곳 등 총 1만 1,000여 명이 일하던 곳이다. 그 많던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 여파로 군산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황량하게 폐허로 변한 옛 공장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깊은 한숨이 이것을 입증한다.
지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 많던 근로자는 어디로 갔을까? 7년 전을 되돌아보면 작금의 상황이 이해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성 노조이다. 당시 이들의 행태가 뚜렷이 각인된 것은 너무 몰상식적이어서이다. 망해가는 회사 노조가 파업으로 사측 심기를 건드렸다. 투자 이익을 우선하는 해외 자본가는 그것을 큰 리스크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익이 남지 않는 회사였다. 노조까지 말썽을 부리자 철수를 결정한 것이다. 노조의 행동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은 원죄가 너무 크다.
우리의 노사관계를 생각하면 협력보다 대립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형성됐던 관계가 그대로 이어졌다. 지금도 노조는 연례행사로 파업을 한다. 우리 업계는 포스코가 파업 전 극적으로 합의했고, 현대제철 파업이 최근 종료됐다. 현대제철 파업은 사회적 파장이 컸다. 노사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으로 치닫자 우려도 컸다. 일부 공장 파업과 부분·일시파업 등이 뒤따랐다. 그리고 1953년 창립 후 처음 직장을 폐쇄한 것은 충격이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재미로 보는 싸움 구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경제라는 말이 있다. 한 나라의 가정, 기업, 정부의 경제 활동을 통합해 종합적으로 파악한 경제 활동을 이르는 말이다. 그 국민경제 속에 현대제철 역할도 분명히 존재한다. 회사는 철근을 생산하고, 형강도 생산한다. 이것을 사용해 다리와 도로가 건설되고 주택을 짓는다. 국가 기간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렇기에 종사들은 큰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회사에 대해 국민적 관심이 높은 것은 이러한 역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종사자들의 책임이 무겁고 행동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은 숨 가쁘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문화는 대세를 거스른다. 제조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큰 힘이다.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노사관계의 변화가 절실하다. 회사의 방향성과 대치되는 강성 노조 활동은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근로자·회사·지역 사회 모두에 큰 상처만 남길 뿐이다. 그것을 우리는 군산에서 배웠고 현대제철을 통해 배운다. 어디든 다툼이 있다. 그 다툼이 건전할 수 없지만 때로는 발전을 위한 진통일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수많은 근로자가 실직한 한국GM 군산공장이 반면교사(反面敎師)이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실직한 대부분이 아직 예전 수준의 삶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공장 철수는 단순히 근로자의 일자리 상실에 그치지 않는다. 관련 산업 피해와 군산 경제의 기틀이 되는 큰 기둥을 무너트렸다. 이 상처가 아물려면 기약이 없다. 7년이 지난 후에도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더 깊어졌다. 2022년 기준 군산지역 실업자 수가 2천여 명이다. 2018년 5천여 명에서 많이 줄었지만 적지 않은 수준이다. 이것을 보면 지금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깨닫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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