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보호무역 여파…글로벌 수급 불균형 가속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전 세계 원자재 시장에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확장법》 제232조를 근거로 구리 수입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를 지시하면서 구리를 둘러싼 국제 무역 질서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관세 부과 여부는 향후 270일간의 조사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지만 주요 투자은행들이 2025년 말까지 25% 수준의 관세가 현실화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시장은 즉각적으로 과민 반응을 보였다.
트라피구라, 글렌코어 등 대형 무역업체들은 원래 아시아로 향하던 10만~15만 톤 규모의 정제 구리 선적을 미국으로 긴급 전환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월간 구리 수입량은 기존 7만 톤에서 50만 톤으로 폭증했다.
시장 가격도 요동쳤다. 뉴욕상품거래소(COMEX)의 구리 선물 가격은 연초 대비 27% 이상 상승했으며 런던금속거래소(LME)의 구리 가격은 톤당 1만 달러를 돌파했다. 두 시장 간 가격차는 1,200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내 구리 재고는 30만~40만 톤으로 늘었고, 반대로 아시아 LME 창고에서는 인출 요청이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며 지역 간 재고 불균형이 심화됐다.
미국은 자국 생산량의 두 배에 달하는 구리를 소비하고 있어,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고가 수입을 통한 수급 의존이 불가피하다. 전기차 배터리 가격은 15% 상승했고, 테슬라는 일부 모델의 납기를 연기했다. 건설업계에서는 구리 배관 가격이 한 달 사이 15% 오르며 일부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고, 전선 업계는 주문량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면서 중소 제조업체들은 재고 부담과 유동성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칠레 국영 광산회사 코델코는 미국 수출 비중을 기존 30%에서 45%로 늘렸고, 멕시코와 캐나다의 광산업체들은 관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으로 일부 공급을 돌렸다. 이로 인해 아시아와 유럽 시장에서는 구리 현물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단기적인 충격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전 세계 주요 구리 광산의 70%는 이미 30년 이상 채굴이 이뤄졌고, 신규 광산 개발에는 최소 6~8년이 걸린다. BHP는 향후 10년간 글로벌 구리 공급 부족이 1,000만 톤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전기차, 태양광, 데이터 센터와 같은 녹색 전환 산업은 구리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전기차 한 대에 평균 83kg의 구리가 사용되며, 이는 내연기관 차량의 4배에 달한다. 태양광 1MW당 구리 사용량은 5.5톤에 달하고, 데이터 센터는 연간 6% 이상의 수요 증가를 견인하고 있다.
이번 ‘구리 쟁탈전’은 단순한 가격 상승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자원 흐름의 기본 원칙이 ‘효율성 중심’에서 ‘위험 회피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의 원자재 시장이 정치적, 경제적 변수에 따라 어떻게 새롭게 재편될지를 예고하는 분기점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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