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반등, 긴 추락’…철강은 왜 늘 불황에 갇히는가?
철강산업은 ‘단기 호황, 장기 불황’이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문제는 해당 진폭이 비대칭적이라는 점이다.
짧은 회복 뒤엔 길고 깊은 침체가 뒤따르고, 시장은 언제나 재고와 공급 과잉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20년 넘게 반복된 이 흐름은 단순한 경기 요인이 아닌, 산업 체계의 내재한 한계 때문이다.
◇ 짧은 봄, 긴 겨울…반복되는 철강 사이클
철강산업은 수 차례 강한 파고를 겪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2008년은 ‘슈퍼 사이클’로 불리는 철강 전성기였다.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촉매가 됐고, 금속 가격은 5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랐다. 철강 가격도 2008년 중반 톤당 1,000달러를 넘어서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하지만 2009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호황은 단숨에 꺼졌다.

2021년에도 비슷한 장면이 재현됐다. 팬데믹 이후의 보복소비와 각국의 경기부양책으로 철강 수요가 급등했고, 가격은 단기간에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반년이 채 지나기 전, 고금리와 부동산 침체가 찾아오며 불황은 되풀이됐다.
철강 사이클은 외부 변수에 따라 출렁이지만, 줄지 않는 공급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도 깔려 있다.
철강은 대규모 설비에 기반한 전형적인 장치산업이다. 설비를 한 번 돌리면 멈추기 어렵고, 멈추면 오히려 손실이 커진다. 경직된 생산 시스템 탓에 수요가 줄어도 공급은 줄지 않고, 재고는 늘어난다.
여기에 선제적 증설이라는 철강업계 관행까지 더해진다. 미래 수요를 선점하려는 설비 확대는 수요보다 빠르게 돌아오고, 이내 가격을 끌어내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설비는 한 번 증설하면 쉽게 멈출 수 없다”라며 “미래를 보고 늘린 생산능력이 오히려 시장을 압박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돌리지 않으면 적자고, 돌리면 재고가 쌓이는 게 철강의 현실”이라며, “호황기에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불황이 오면 이 고정비 구조는 기업에 크나큰 부담으로 되돌아온다”고 덧붙였다.
◇ 세계를 흔드는 변수, ‘중국’
중국은 전 세계 조강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슈퍼 공급국이다. 내수 중심으로 구축된 방대한 생산설비는 수요가 둔화할 때 곧장 수출로 방향을 틀고, 이 물량이 글로벌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지면 가격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국내 철강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이 저가 오퍼를 내는 순간, 가격 책정은 물론 수출 전략, 심지어 설비 가동 일정까지 전방위로 흔들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저가 오퍼만 던져도 국내 시장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충격이 반복되는데도 회복 속도는 점점 더 느려진다는 점이다. 철강은 회복보다 버티기가 더 어려운 산업이다. 고정비가 많은 탓에 수요가 조금만 줄어도 수익성은 크게 흔들리고, 설비 투자에 들어간 비용은 수년이 지나야 회수할 수 있다.
◇ 수요는 줄고, 비용은 더 무겁다
철강의 주요 수요처였던 건설 등 전통 산업은 이제 성장 한계에 다다랐다. 선진국에서는 인구 정체와 ESG 규제로 수요가 둔화했고, 신흥국도 과거처럼 인프라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선 경량화와 전기차 전환이 철강 수요를 제한하고 있고, 건설 현장에선 고강도소재를 통한 사용량 최소화가 보편화됐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요는 늘어난다’는 전제 자체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수요만 줄어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철강산업은 설비 투자에 수년이 걸리고, 고정비 비중이 높아 외부 충격이 닥치면 손실만 쌓인다. 수요가 조금만 줄어도 수익성은 급격히 나빠지고, 회복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기에 ESG·탄소중립 대응, 원자재 리스크 등 비재무적 부담까지 더해지며 철강사의 대응 여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춰가고 있지만, 업계 전반의 체력이 이를 버틸 만큼 탄탄하진 않다.
◇ 대응은 시작됐다…‘덜 돌려도 남는 체질’로
최근 국내 철강업계는 예전처럼 설비를 무작정 돌리지 않는다. 특히 생산 효율을 어떻게 높일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리한 설비 가동보다는 가동률 조절과 수율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공정 전환에도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지난해 포스코는 수익성 방어를 위해 과감히 노후 설비 폐쇄를 단행했다. 45년간 2,800만 톤을 생산한 포항 1선재공장을 비롯해, 포항 1제강공장까지 단계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 중국산 저가 선재의 공세에 경쟁력을 잃은 데다, 설비 노후화 문제까지 겹친 판단이었다.
현대제철은 철근 시장 침체에 대응해 감산 카드를 꺼냈다. 올해 1월 인천·포항 등 철근 생산설비를 순차적으로 멈춰 약 7만 톤을 줄였고, 기존 4조 2교대 체제를 2조 2교대로 전환하며 가동 방식도 조정했다.
동국제강도 적극적으로 가동률 조절에 나섰다. 지난해 하반기 철근 공장 가동률을 평시의 65% 수준으로 낮춘 데 이어, 올해는 50%선까지 줄였다. 3월엔 생산과 출하를 각각 닷새간 멈추는 특단의 조치도 단행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늘리기보단 버티는 힘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불황에 강한 체질을 만드는 것이 철강사의 생존 조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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