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 수요 회복 국면 속 외면받는 한국 시장

종합 2026-01-20

세계 철강 수요가 4년 만에 반등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된 가운데 한국 철강산업은 그 회복 궤도에서 사실상 이탈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국이 인프라 투자와 금융 여건 완화, 신흥국 성장에 기대 ‘완만한 회복’을 논하는 사이, 한국은 내수 기반 약화가 고착화하는 가운데 대외 통상 장벽이 동시에 높아지며 ‘수요 침체’가 ‘산업 구조조정’으로 직결되는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부진은 경기순환 둔화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생산·수출·투자 판단이 한꺼번에 재편되는 전환기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 글로벌은 회복, 한국은 ‘부진 지속’

세계철강협회(worldsteel)는 2026년 글로벌 철강 수요가 전년 대비 1.3% 증가한 17억7,3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정점을 찍은 이후 4년간 감소 또는 정체를 반복해온 글로벌 철강 시장이 2026년 들어 비로소 ‘완만한 회복(modest growth)’ 국면에 접어든다는 진단이다.

알폰소 이달고 세계철강협회 경제위원회 위원장은 “글로벌 경제의 회복력과 주요국 공공 인프라 투자 지속, 금융 여건 완화가 수요 회복을 뒷받침하고 있다”라며 “중국 수요 감소폭 둔화와 인도·동남아·중동 신흥국의 성장, 유럽의 지연된 수요 회복이 2026년 시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철강 수요가 4년 만에 반등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된 가운데 한국 철강산업은 그 회복 궤도에서 사실상 이탈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금속신문DB세계 철강 수요가 4년 만에 반등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된 가운데 한국 철강산업은 그 회복 궤도에서 사실상 이탈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금속신문DB

지역별로 보면 중국의 철강 수요 감소폭은 2025년 -2.0%에서 2026년 -1.0%로 둔화할 전망이다. 중국을 제외한 개도국은 2026년 4.7% 성장세를 이어가며, 인도는 2025~2026년 연평균 약 9%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역시 2025년 소폭 감소 후 2026년 1.5% 반등이 점쳐진다. 유럽연합(EU)과 영국은 인프라·국방 지출 확대에 힘입어 3%대 성장, 미국은 주택 건설과 민간 투자 회복으로 1%대 후반 성장이 전망된다.

다만 한국과 일본은 예외로 분류됐다. 세계철강협회는 “한국과 일본의 철강 수요는 2026년까지 부진(subdued)이 지속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한국은 건설·제조업 동반 침체로 내수가 급격히 위축된 데다, 중국산 저가재 유입과 미국·유럽의 보호무역 장벽 강화로 수출 여건까지 악화되면서 글로벌 회복 흐름과의 괴리가 확대되고 있다는 평가다.

◇ 내수는 붕괴, 수출도 흔들린다

한국 철강산업의 위기는 생산 지표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25년 1~11월 국내 조강 생산량은 5,610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감소했다. 이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연간 생산량은 약 6,100만 톤 수준으로, 2010년 이후 1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내수 침체의 핵심 배경은 건설 경기 급랭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6년 건설투자가 전년 대비 -9.0%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1998년 외환위기(-13.2%) 이후 최대 낙폭이다. 지난 10년 평균과 비교하면 2025년 건축 허가는 18.1%, 착공은 16.0%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따른 장기 수요 축소 국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환경도 녹록지 않다. 2025년 한국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9.0% 감소해 15대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2026년 역시 한국산업연구원은 -5.0%, 대한상공회의소는 -2.1% 감소를 각각 전망하고 있다.

수출 부진의 배경에는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우선 중국산 저가재 유입이다. 2024년 기준 중국은 한국 철강 수입의 49%를 차지하며 최대 공급국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응해 중국산 후판과 열연강판 등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가격 약속 제도를 도입했지만, 중국의 과잉 생산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수출 압력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관세 정책도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3월부터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쿼터 면제를 받았던 한국 역시 이번에는 예외 없이 관세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대미 수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탄소 배출량에 따라 추가 비용이 부과되면서 한국 철강 수출이 최대 20% 이상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EU 세이프가드 쿼터 축소까지 겹치면서 유럽 시장 공략 전략 전반의 재편이 요구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해 구조조정과 고부가 전환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2025년 말 ‘철강산업 발전방안’과 K-스틸법을 통해 과잉 설비 조정, 특수강 육성, 저탄소 전환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특수탄소강, AI 기반 제조 혁신, 수소환원제철을 3대 축으로 삼아 산업 체질을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가운데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북미 현지화와 고부가 전략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양사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EAF) 기반 일관제철소를 공동 구축하기로 하며, 관세 회피와 저탄소 생산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자동차강판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북미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구조다.

포스코는 전기강판, 프리미엄 자동차강판, 에너지용 강재 등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수소환원제철(HyREX) 실증 프로젝트를 통해 장기 저탄소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고급 강재 중심으로 재편하며 중장기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2026년은 바닥을 다지는 해가 될 수도, 구조적 후퇴가 굳어지는 해가 될 수도 있다”라며 “정부 정책과 기업 전략이 얼마나 빠르게 맞물리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철강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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