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니산 둔갑한 中 후판, 슬래브도 국적 바꿔치기
중국산 후판에 최대 34%의 반덤핑 최종 판정이 내려진 가운데 인도네시아산 후판이 사실상 ‘이중 세탁품’이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인니에서 가공된 차원을 넘어, 중국산 슬래브가 제3국을 거쳐 국적을 바꾼 뒤 다시 압연되는 방식이란 것이다.
무역통계로 보면 최근 5년간 인니산 후판은 장기간 공백을 보이다가 간헐적으로만 들어왔다. 대체로 50톤 안팎의 소량 위주로 나타났다. 반면 이번 9월 입항분은 7천 톤을 넘길 전망이라, 업계에선 사실상 ‘우회 수출품’으로 처음 인식되는 본격 물량으로 보고 있다.
이미 후판 자체가 우회 수출인 데다 원재료 단계에서도 국적 세탁이 겹쳐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제도적 허점을 정면으로 파고든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서 확산하고 있다.
◇ 장부 속에 새겨진 ‘슬래브 100% 의존’
본지가 우회 수출자로 지목되는 인도네시아 G사의 2025년 2분기 재무제표와 2024년 통합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 회사는 자체 제강 설비를 전혀 보유하지 않은 전형적인 리롤러 업체로 나타났다.
특히 조선용·구조용 후판을 생산하지만, 핵심 원재료인 슬래브는 사실상 100% 해외에서 조달한다. 이에 어떤 슬래브를 들여오느냐에 따라 완제품의 성분과 품질이 좌우되는 구조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적 지표에서도 그 흔적은 분명하다. 2분기 말 기준 원재료 재고는 5,424억 루피아(한화 약 460억 원)로 전기 대비 45% 늘었다. 같은 기간 단기차입도 25% 증가해 1조1,097억 루피아(약 942억 원)에 달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가까이 확대됐지만, 순이익은 오히려 줄었다. 원재료 확보를 서두르며 금융 비용이 불어난 결과다.
2024년 통합보고서 역시 같은 문제를 짚었다. 회사는 “슬래브 조달 가격이 영업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원재료 확보 전략을 최대 경영 리스크로 꼽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자체 제강 능력이 전무한 만큼 결국 중국 등 외부 공급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중국산 슬래브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배경이 된다”고 말했다.
◇ 1차 세탁, 중국 슬래브 제3국 경유?
업계 시선은 중국 무역업체 Z사로 쏠린다. Z사는 철강 무역과 가공을 동시에 수행하는 대형 기업으로, 최근 반제품 수출을 급격히 늘리며 중앙아시아와 동남아를 주요 경유지로 삼고 있다.
UN 무역통계(UN COMTRADE)와 우즈베키스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우즈벡의 철강 수입액은 3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업계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중국산 슬래브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산 슬래브가 서류상 제3국산으로 둔갑한 정황이 있다는 게 업계의 강한 의심이다.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중국산이라는 흔적을 지우려는 1차 세탁 아니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 2차 세탁, 인니 G사의 압연 통해 ‘인니산 후판’ 등장
이후 해당 슬래브는 인도네시아 G사로 유입된다. 자체 제강 설비가 없는 G사는 외부에서 조달한 슬래브를 압연해 후판을 생산한다. 그러나 최종 제품은 무역 통계상 ‘인니산 후판’으로 기록된다.
이에 중국산 슬래브가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 등 제3국 경유에서 한 차례, 인도네시아 압연에서 또 한 차례 국적을 바꾼 뒤 한국 시장에 유입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이 직접 들어오는 길은 막혔지만, 이처럼 원재료를 돌려 세탁하면 사실상 같은 결과”라며 “후판 자체도 우회 수출인데 슬래브까지 바꿔치기하는 것은 제도의 허점을 노린 전형적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 반덤핑 효과 흔드는 대체재
중국은 2025년 들어 완제품 수출 대신 반제품(슬래브·빌렛) 수출에 집중하고 있다. 1~7월 반제품 수출은 740만 톤으로 전년 대비 320% 늘었으며, 인도네시아는 최대 수입처 가운데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반덤핑 등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파고 속 한국 시장에는 중국산 후판이 ‘인니산 후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오는 그림이 나타난다”며 “이는 단순한 대체재가 아니라 제도적 허점을 활용한 편법에 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산 후판에 고율 관세를 매겨도, 인니산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들어오면 효과가 반감된다”며 “투입재 기준의 검증 없이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산지 증명서만으로는 이러한 ‘이중 세탁품’을 걸러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통관 단계에서 서류 확인만 하는 현재 체계로는 중국산이 인니산으로 둔갑한 물량을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12일 ‘관세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을 입법예고하며 우회덤핑 규제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앞으로는 제3국에서 덤핑 대상 물품을 경미하게 변경하거나, 부품·원재료를 들여와 조립·완성해 수입하는 경우에도 우회덤핑 행위로 인정해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개정안 설명 과정에서 철강을 대표 사례로 언급하며, 해당 품목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무역위원회의 우회덤핑 조사기간도 기존 ‘기본 8개월·연장 9개월’에서 ‘기본 9개월·연장 10개월’로 늘어나, 보다 충실한 조사와 결론 도출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입 물량에 대한 정밀한 원산지 검증 없이는 반덤핑 조치의 효과가 무력화된다”라며 “원재료 투입 단계까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야드 고객센터
경기 시흥시 마유로20번길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