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성 칼럼 - 가발로 시작한 우리의 수출

수출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생존 출구이다. 자원이 빈약한 국가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수출이 3년 6개월 만에 최대 성적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으며 회상(回想)에 젖는다. 수출 목표가 100억 달러이던 시절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유신을 통해 198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다행히 이 목표는 3년 앞당겨 1977년에 달성했다. 군사 작전하듯이 밀어붙인 결과다. 이와 함께 국민소득 1,000억 달러도 달성했다. 온 국민의 피나는 노력이 마침내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1964년 1억 달러를 돌파한 후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1962년 이래 연평균 수출신장률은 42.4%를 기록했다. 수출시장은 33개국에서 133개국으로, 수출품목은 69개에서 1,200개로 늘어났다. 국민 1인당 274달러, 하루 평균 2,700만 달러를 수출한 셈이다. 100억 달러 수출의 10대 상품은 직물제 의류(9.9%), 전기기기(9.2%), 수송기기(6.8%), 직물(6.1%), 신발(4.9%), 활선어(4.8%), 쇄타류 (4.4%), 합판(3.2%), 섬유사(2.5%), 강판(1.7%) 순이었다. 당시 수출 100억 달러는 세계 25위에 해당할 정도로 엄청난 성과였다.
수출을 이끈 일등공신은 ‘중동 특수’라고 불렸던 해외 건설 붐이었다. 국내 건설기업들은 1973년부터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건설 현장으로 속속 진출했다. 1975∼1979년 중동 특수를 통해 수출액의 40%에 달하는 외화를 벌어들였다. 1960년대 ‘베트남 특수’에 버금가는 역할을 중동 특수가 담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경제가 마냥 좋은 구조는 아니었다.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문제였다. 이에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정책은 뒷전이었고, 열악한 처우로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희생이 컸다.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하지만 현 연평균 1%대 성장시대에 부러운 것은 40%대 성장을 한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믿고 노력한 결과다. 그중에는 여공의 힘도 컸다. 시골에서 상경해 밤낮없이 일했던 이른바 ‘가발공’들도 수출 역군이었다. 우리나라 수출 10% 이상을 차지하며 효자 품목으로 이름이 높았다. 당시 한국이 생산한 가발은 꼼꼼한 수작업에 의한 높은 품질로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도 첨단 기술과 결합해 K-뷰티 성장의 주춧돌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79년 8월 9일, 가발 업체였던 YH무역의 여성 노동자 190여 명이 회사 운영 정상화와 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인 ‘YH 여공 신민당사 점거 농성 사건’을 기억한다. 노동환경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다가 시위 현장에서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한 22세 젊은 전태일이 있었다. 이렇듯 수출은 소외되고 알아주지도 않는 곳에서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다. 그 희생이 밑바탕이 되어 오늘날 수출 대국의 꽃을 피운 것이다.
수출 공로를 따지면 대기업이 월등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출 1·2위 품목은 반도체와 자동차이다. 반도체는 9월 월간 기준 최대 수출액인 166억 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서버를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메모리가 호조를 보였고, 가격도 양호한 흐름을 나타내면서 최고 성적을 갈아치웠다. 자동차도 친환경차와 내연기관차 수출액이 늘면서 역대 최고인 64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중고차 수출액이 2.3배 늘며 호실적을 뒷받침했다. 다만 철강은 26억 3,000만 달러로 4.2% 감소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수출을 견인하는 것은 대기업이지만, 중소기업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적절한 비유다. 이른바 K 산업으로 불리는 직종이 그렇다. 모두 연간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K-뷰티, K-푸드, K-의약품, K-방산이 대표적이다. 각 산업에 맞는 다양한 마케팅과 정부의 수출지원 정책이 맞물리며 거둔 성과다. 특히 K 문화가 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성장을 견인했다. 미국의 관세로 대미 수출은 줄었지만, 그 외 지역은 호조인 것도 긍정적이다. 이 추세가 길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대미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것은 여전히 부담이다. 지난 8월 12.0% 급감한 데 이어 9월에도 전년 동기 대비 1.4% 감소하며 부진했다.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21% 늘었지만, 품목별 관세 여파를 받는 철강과 자동차 수출액이 각각 15%, 2.0% 줄었다. 아직 미국과 관세협상 등 우리 수출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다. 그러나 빠른 수출시장 다변화를 통해 9월 전체 실적이 사상 최대를 경신한 것은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지금은 이빨이 없어도 잇몸으로 버텨내야 할 정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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