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 대응, 선택이 아닌 생존 기술

대장간 2025-12-31

경제학 교과서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2025년 글로벌 철강 시장은 이 오래된 명제를 보란 듯이 비틀었다. 미국에서는 열연코일 가격이 톤 당 1,000달러를 넘나들었고, 유럽 역시 최악의 체감 경기 속에서도 가격 반등에 성공했다.그런데 이는 수요가 폭발해서가 아니다. 정부라는 거대한 플레이어가 ‘관세’와 ‘탄소 규제’라는 방파제를 높게 쌓아 올린 덕분이다. 이쩌면 철강사들에게 원가 절감이나 영업력보다 더 중요한 생존 키워드는 바로 ‘대외정책 대응력’이 되었다.2025년 미국 시장은 ‘수요 없는 호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지난 6월 4일, 미국 정부가 철강 수입 관세(Section 232)를 기존 25%에서 50%로 전격 인상하자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관세 장벽은 수입산 철강 가격을 강제로 끌어올려 내수가격의 하방지지선을 콘크리트처럼 굳건하게 만들었다. 미국 철강사들은 이 틈을 타 공급을 조절했다. 전기로 가동률을 75~76% 수준으로 묶어두면서 공급 과잉을 막았고, 그 결과 수요 폭발 없이도 고가(高價) 시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이는 철강 비즈니스가 더 이상 단순한 제조·판매업이 아니라, 정부의 무역 장벽을 지렛대로 삼는 ‘규제 관리업’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유럽의 상황은 더 극적이다. 자동차와 가전 등 전방산업이 멈춰 서고 스크랩 야드가 매물로 나올 만큼 실물 경기는 바닥이었다. 하지만 9월 이후 철강 가격은 오히려 반등했다. 2026년부터 본 적용(Definitive regime)에 들어가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장의 심리를 강하게 지배했기 때문이다.수입자들에게 CBAM 인증서 구매와 정산 의무가 부과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저가 수입재 유입은 위축됐다. 이처럼 유럽 철강사들은 실수요가 개선되지 않았음에도 ‘수입 방어’라는 기대감 하나로 가격 협상력을 회복했다. 이는 규제가 실제 비용으로 청구되기 전부터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선행지표로 작동함을 입증했다. 여기에 지속적인 에너지(전력, 가스) 비용과 스크랩 가격 강세로 인한 원료비 부담이 누적되면서 철강사들의 마진이 한계치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함께 작용하면서 수급 논리를 벗어난 상황에서도 철강제품 가격의 인상이 이뤄졌다.  2026년을 바라보는 지금, 한국 철강·비철금속 기업들에 던져진 과제는 분명하다. 미국이 보여준 ‘관세의 벽’과 유럽이 예고한 ‘탄소의 벽’은 이제 더이상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가 되었다.미국 시장에서는 가동률과 관세의 역학 관계를 읽어내야 하고, 유럽 시장에서는 CBAM이 바꿔놓을 원가 구조와 통관 절차에 완벽히 적응해야 한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드는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이 높은 벽을 넘기는 어려워졌다. 통상 환경 변화를 미리 읽고, 조업 전략과 수출 루트를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는 ‘정책 대응력’이 기업의 이익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2026년 유럽의 승부는 규제가 아니라 ‘수요’에서 갈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그 수요가 회복되기 전까지 시장을 지탱하는 것은 여전히 정책일 것이다.이처럼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떠났다. 대신 관세 명세서와 탄소 배출량 보고서를 든 정부의 손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통상팀과 대외협력팀을 단순 지원 부서가 아닌, 최전방의 ‘수익 창출 부서’로 재정의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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